12/19/2018

2018 Conviviality Seongsu





 2018 인사이트씨잉 프로젝트
Conviviality Seongsu



2018 서울상상력발전소
빠른 발, 따라가는 시선 
2018. 9. 13. THU _ 9. 21. FRI
성수동 에스팩토리 A동
참여작가: 인사이트씨잉(조성배, 이정훈, 최형욱), 김상진, 이예승, 
조성현, 지누박, 진달래&박우혁, 허나영, 세운_여인혁, 세운_프래그랩
주관 및 후원 : 서울문화재단





이번 프로젝트는 성수동의 제작문화를 리서치 했던 2015년 <페키트 : 성수동 프로젝트>의 연장 선상에서 기획되었다. 그 당시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 초기 단계였던 성수동 지역에서 구두제작산업의 종사하시는 분들을 만나 고 인터뷰 하면서 그분들의 보이지 않는 그물망을 따라가고 그분들의 언어와 일과 도구와 네트워크들을 설치미술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작업이었다.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방문해 본 성수동 지역은 새로 유입되는 구성원들과 기존의 쇠락해가는 산업 구성원들 간의 간극이 더욱 심화된 양상이었다. 서울시와 여러 기관의 수제화 거리 띄우기 작업에도 불구하고 구두산업 종사자 분들 누구도 이 산업의 미래를 낙관하는 분이 없었다. 심화된 젠트리피케이션은 임대료 상승을 빠른 속도로 부추기고 있었고 “구두 부자재 거리”에서 “뚝섬공원”으로 이어지는 벨트를 중심으로 건물주들은 기존의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만을 기다렸다가 구두, 가죽, 기계 관련 산업이 아닌, 더 높은 월세를 지불하고자 하는 입주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두 산업은 중국산 제품에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명품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격되기에는 인식의 부족, 디자인의 부족 등 간극 사이에서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한 체 분투하고 있었다. 


한편 새로 들어온 입주자들은 높은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지불하고 최신의 기호에 맞는 단장을 하며 여기저기 공사 가 진행 중이었다. 과연 이곳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건물주와 기존의 구성원들과 새로 들어온 구성원들은 각자의 합 목적성에 따라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있는데 모두 다 위태해 보이기는 일반이었다.






이러한 지역적 배경 아래서 성수동 지역의 제작 문화를 중심으로 전시를 한다는 게 또 하나의 무책임한 불 지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가죽을 유통하시는 사장님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과 저곳을 왕래하시는데 그분들의 안장 문양이 독특한 것을 발견하였다. 오래된 시트 위에 본인들이 유통하는 가지각색의 가죽으로 랩핑해서 오토바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일종의 거대한 시장의 유통 흐름과 상관없는 자율적인 필요에 의한 만들기였다.








우리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이러한 자율적으로 기술을 사용하는 “유희와 활력”에 주목하였다. 어쩌면 거대한 자본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적 지표로 측정되지 않는 활동과 기술들의 사용이 이 지역의 활기를 지탱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생각하였다.

이러한 개념을 교육 철학자 이반 일리치(1926-2002)는 Conviviality 라는 신조어를 통해서 설명하였다. 이를 국내 번역에서는 “절제” “공생” “유희” 등의 여러 가지 개념으로 번역하였는데 본래 뜻은 산업적 생산방식과 교환방식에 대립하는 개념으로서 지역의 자립과 자존을 위한 자생적이고 유희와 활기를 수반하는 생활 수단과 기술을 의미한다.





우리는 성수동 제작자들의 생존과 필요를 위한 “스스로 만들기”의 가능성을 발견함으로써 이러한 Conviviality를 찾고자 하였다.
우리는 예술가로서 이러한 자생적인 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는데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을 두었다. 그래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가죽과 관련된 기술들을 이용한 자생적 만들기들을 축제와 같은 마당으로 초청하고 자 한다.


이에 기존에 가죽공예로 잘 시도되지 않았던 영역인 자동차 외피를 가죽으로 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엉뚱하고 새로운 일에 호기심을 보이는 많은 기술자 장인분들의 참여를 끌어내고자 한다. 기존의 신발, 의상, 가방에 국한되었던 그분들의 기술의 외연을 확장하고 ‘쓸모를 위한 만들기’를 넘어서 상상력과 활력을 모으는 무대로서 자동차 외피를 입체적으로 싸는 작업을 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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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서울』 (서울문화재단 월간지) 9월호 기사 수록
장소의 빛 
저희팀은 그동안 주로‘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프로젝트들을 수행해 왔습니다. 특히 장소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지도의 개념에 관심이 많이 있었습니다.
도시의 변화와 장소를 둘러싼 개인들의 다양한 기억과 감각의 층위들을 따라 다니는 작업들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변화의 진폭이 매우 큰 지역들을 배경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수동 지역도 그 중 하나입니다. 소위 뜨는 동네라고 하는 성수동 지역에서 오랜 기간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 보았을 때 그분들은 기존의 여러 지자체의 행사와 개입들이 반짝이는 이벤트일 뿐 근본적인 갈등 해소에 큰 힘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본인도 밀려나게 될 거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경기도 어렵고 상황도 좋지 않은데 전시를 빌미로 외부인의 시각에서 성수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게 무척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억지로 끌어 담기보다는 작가들이 의뢰서를 가지고 그분들을 찾아가 실재로 그분들 노동 (유통 및 제작)에 정당한 보상을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분들 안에 있는 네트워크와 자발성 그리고 창조적 제작 환경으로서 강점들을 가시화 할 수 있는 제안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죽으로 한 번도 제작해 보지 않은 것을 싸보는 쉽지 않을 의뢰를 가지고 성수동 분들을 만나보기로 하였습니다. 바로 자동차의 외피를 가죽공예로 감싸는 일 입니다.
저희가 이 제안을 가지고 관련 업체 분들을 찾아뵈니 다들 황당해 하시면서도 강한 호기심을 보이셨습니다. 쉽게 말씀하시는 분, 솔직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시라는 분, 이 사람을 찾아가 보라, 저 사람을 찾아가보라 등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짓을 왜하냐는 반응에서부터 해 놓고 나면 멋지겠다 까지... 이러한 반응과 대화의 과정 속에서 성수동 지역에서 호기심이 많고 호혜적이며 상당한 기술을 갖춘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희의 프로젝트는 한 여름 계속되는 걷기와 만남의 과정 속에서 예기치 않은 즐거운 보상이 뒤따라오게 됩니다. 관광(觀光)은 그 장소의 빛을 보는 것입니다. 성수동 지역 분들의 자생성과 창조성,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낙관적 태도 등 이렇게 그 장소의 관계들 속에서 흥미로운 빛들을 발견해 가고 있는 중 입니다.


프로젝트팀 인사이트씨잉(Insightseeing)은 장소성을 기반으로 여러 프로젝트들을 실행 해 온 작가 그룹이다. 오랫동안 거주한 지역주민과의 인터뷰를 통해 개개인의 역사에 귀 기울이고 주관적인 기억과 감각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123 프로젝트-선감도(先感圖) (경기창작센터, 경기, 2012), 창동여지도(국립현대 미술관 창동창작스튜디오, 서울, 2013), 잇!태원:감각의 지도 프로젝트(삼성미술관 리움, 서울, 2014), 사물학II-제작자들의 도시(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5)등에 참여하였고 막계페스티벌(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5)의 시민참여 프로그램 기획과 기타 강연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였다. 2013 창동레지던시에서 지역연계 프로젝트 입주작가로 활동하였다. 


                                      

5/31/2018

2018 변두리 주민을 위한 디자인, 농막







쌀의 독백: 일시적 식구
Monologue of Rice: Temporary Mouths to feed
2018518 – 527
경기상상캠퍼스


"여기서 텃밭농사 지은 지 10년 되었어. 물이 안 나와서 힘들어ᅠ
수도는 니기랄 돈이 한 달에 백만 원씩 나오는데 어떻게 ? 
농사 뭐 하러 지어? 차라리 사먹는게 낫지. ᅠ
물이 잘 나오면 돈이 들어도 지하수 파겠는데 팠다가 안 나오면 말짱 황이잖아. 
옛날에는 지하수 물이 잘나왔어. 
재활용센터 짓고 나서는 잘 안 나와. 저게 지하 8층이야. 
지하에 물줄기가 다 끊긴 것 같아. 
방수하고 머하고 하는 바람에 물줄기가 잘려 버렸어.” 

(중랑구 거주 40년, 최 씨 어르신, 70대)





농지법 시행령상의 '농막'의 정의는 “농작업에 직접 필요한 농자재 및 농기계 보관, 수확농산물 간이처리 또는 농작업 중 일시휴식을 위하여 설치하는 시설”(전체면적 20㎡ 이하이고, 주거목적이 아닌 경우로 한정한다.)이다.
하지만 도시 변두리 지역의 실재 농막의 숨은 정의는 좀 더 복잡하다. 유명인사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자숙의 기간 숨는 공간이기도 하며, 주말 농사를 짓는 도시민들에게는 주말에 친구들과 모여 잔치를 열 수 있는 아지트가 되기도 한다. 또한 불법이긴 하지만 상당수의 농막은 실제 오갈 곳 없는 많은 사람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 실제로 서울 변두리의 그린벨트 지역에서 농막을 지어 놓고 도시와 경계의 삶을 오가는 70대 어르신을 우연히 만났다. 평일에는 냉동차 운송 일을 하시고 일이 없는 날이면 농막에 나와 밭을 돌보신다. 땅 주인에게 일 년에 쌀 한 가마니 정도 세를 내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든 나가라면 나갈 수 있는 마음으로 솥도 걸어놓고 화목난로도 설치하고 라디오와 냉장고도 가져다 놓는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함께 모여 한 잔 나누시는 거점이 된다. 이렇듯 서울 변두리 지역 및 경기도 지역의 '농막'들은 단순한 농사 부대 시설의 의미를 넘어서 도시 경계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자기 삶의 자리를 마련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형태의 농막을 사회적 디자인으로 보급 가능한 모듈 형태로 제작해 보고자 하였다. 가변적인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 가능하도록 쉽게 분해, 조립, 이동이 가능하며 거주의 기능보다는 커뮤니티 거점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형태이면서도 사적 공간으로 은폐가 가능한 형태로 디자인하였다. 일단 분해하면 패널로 포개져서 1.5t 트럭으로 한 번에 배송할 수 있고 성인 2명이 한나절이면 조립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였다.






이번 “쌀의 독백” 전시의 일환으로 실험적인 성격으로 농막 건축 모듈을 제작하였다. 궁극적으로는 보편적인 형태로 가기 위한 실험 모듈 적인 성격으로 제작되었다. 좀 더 가벼워져야 할 필요와 재료비가 감축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실제 이번 실험 모듈은 여러 시행상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시 기간 그 역할을 독특하게 감당하였다. 전시 오픈하는 날 예상치 못한 봄비가 쏟아졌고 자연스레 비를 피할 수 있는 차양 아래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전시 기획자의 준비로 털레기 매운탕과 미꾸라지 튀김이 준비되었다. 비 오는 날 잊을 수 없는 맛과 분위기의 오프닝이 되었다.






전시기간 경기상상캠퍼스 일대에서는 ‘수원 국제연극축제’가 진행되었다. 다양한 부대행사가 열리고 많은 시민이 방문하였다. 기능을 알 수 없는 숲속의 설치 구조물은 자연스레 익명의 시민들이 쉬어가는 거점이 되었다. 발길을 멈추고 농막 앞뒤의 트여 있는 풍광을 감상하고 익명의 타인들이 묘하게 공존하고 섞이는 시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주택이 공장에서 모듈로 완성돼서 배송 후 조립되는 프리패브 공법이 건축 최근 들어 상당히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농막은 친구 1, 2인이 손수 지을 수 있는 만만함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프리패브 건축과는 지향점이 조금은 다르다. 여전히 프리패브 건축은 비싸고 전문적이고 완전한 건축을 지향한다.



이번 기획은 불완전하지만 현실적 형편상 자기 삶의 자리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힘으로 자기 삶의 자리를 만들고 커뮤니티가 함께 더불어 이용할 수 있는 ‘건축적 공동성’의 원형을 회복하기 위한 씨앗으로 이번 농막 모듈을 제작하고자 하였다.


변두리 지역의 삶의 현장에서는 이미 앗시바로, 비닐로, 샌드위치 패널로, 혹은 버려진 스티로폼으로 이러한 주체적인 ‘자리’ 만들기가 실행되고 있다. 언뜻 도시를 관리하는 관료나 외지인의 시각에서 보면 지저분해 보이고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해야 할 불법적 요소로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거대한 국가 복지 기구가 거대한 비용을 들여서 이루고자 해도 이루기 어려운 인간다운 삶을 누릴 가능성이 그 지저분한 자리 안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울 변두리 지역에 노년 세대를 위한 새 공공임대아파트를 지나가면서 보게 되었다. 건물도 새것이고 조경도 잘되어 있었다. 높은 아파트 베란다 틀에는 가을이 지날 무렵이라 무청이 가득 널려 있었다. 예쁘게 조경이 된 아파트 공원 갑판에는 빨간 고추가 널려 있었다. 그분들의 몸에 새겨진 행동 기억과 새로운 공간이 만날 때 그분들은 젊은 세대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장소를 변형해서 사용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깨끗한 엘리베이터가 있고 헬스기구가 있는 건물이 아니라 더불어 어울릴 수 있는 만만한 마당이 아닐까? 

| 2018.5 최형욱





11/07/2017

2017 인사이트씨잉 특강





2017년 10월 31일 
17시-18시 30분
장소: 서울시 성북구 국민대학교 예술관 116호







Q1. 인사이트씨잉 어떻게 시작되었나?

인사이트씨잉은 2012년에  경기도지역에 작가 작업실에 친한 선후배 작가들이 모였다가 우발적으로 시작된 모임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 회의 수다 떠는 모임으로 출발하였습니다돌이켜보면 졸업 힘든 창작자로써의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목적이 컸던 같습니다.  한해 동안 여러 프로젝트 기획안들을 작성하였고 개중에는 운좋게 1 심사를 통과하였지만 여러 2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꽤많은 미완의 프로젝트 기획서들이 축적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12 가을 , 나광호 작가가 입주해 있던 경기창작센터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있어서 거기에 협력 팀으로 참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Q2. 작업의 주제 ?

저희 팀은 '장소'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프로젝트들을 수행해 왔습니다. 특히 장소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지도라는 개념 자체에 관심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연인이 통화할때 주로 첫 마디는 "어디있어?"입니다. 상당이 복잡한 뉘앙스를 풍기는 질문이지요. 이때  '어디에 있다'라고 대답할때 특별히 신중해야 합니다. 이렇게 어디에 있다라는 질문은 어떤 맥락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이야기들을 유추할 있게 합니다. 장소는 단순히 독립적인 하나의 부분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문화적 반응 방식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구성 요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영어표현에서 'take place'라는 표현이 '사건이 발생하다. 일어나다.'라는 뜻인 것만 봐도 있습니다.

공간은 상당부분 위계, 권력 관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흔히 일반적인 사무실의 책상 구조만 살펴봐도 알수 있습니다. 팀장님이나 부장님의 자리는 주로 창을 등지고 모든 아래 직원을 감시할수 있는 구조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팀장님은 자리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이동 모든 직원들의 책상에서 무슨일이 처리되고 있는지 감시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는 불가능하지요. 가정에서도 가구의 배치를 결정할수 있는 사람이 권력자라고 할수 있습니다. 집에서 주로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약자들은 의자하나 자기 마음데로 옮길 없게 됩니다. 공간의 범위를 크게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요? 도시의 라인과 윤곽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요? 나라의 국토를 조정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사람이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산다는 것은 일정한 위계아래 들어가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소를 둘러싼 경험과 이익 관계들은 권력관계에 따라 매우 첨예하게 나뉘게 됩니다.



Q3. 지도는 실재를 반영하고 보여주는 중립적인 도구 인가?

특히 장소를 2차원 평면 위에 표기하는 '지도' 문명의 형성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지도의 역사는 프톨레마이오스 이래 신화와 미지의 변방을 지워가고 소위 명확성을 획득해 역사라고 할수 있습니다. 과정에서 누가 만들었나? 무엇을 위해 만들었나? 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살펴보면 지도의 맥락에 대해 좀더 확실히 이해할수 있게 됩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해러퍼드 마파문디]
다음은 대표적인 중세시대 세계지도라고 할수 있는 '해러퍼트 마파문디'입니다. 오랫동안 성당 안에 숨겨져 있다가 발견된 지도 입니다. 이때의 세계는 물론 유럽 중심의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세계지도 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동방에 예루살렘 너머지역을 표기하기는 표기하였는데 그곳에 대해 정보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곳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채워 놓았다는 점입니다. 뿔이 있는 괴물, 손과 발이 나무로 되어 있는 나무 인간 .. 심지어 너머에 악마와 괴물들이 살고 있는 미지와 두려움의 세계를 나름의 상상력으로 재미있게 표시해 놓았습니다. 모르는 곳을 모른다라고 표시하지 않고 자신들의 세계관안에서 상상력으로 채워 놓았던 이런 현상은 동양의 도교의 경전 <천해경> 바탕으로 제작된 세계지도,<천하도>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됩니다.






[칸티노 세계지도, 1502]
근대지도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이탈리아 스파이 칸티노의 지도입니다. 이때부터는 중세지도에서 발견되는 신화와 상상력의 요소는 제거됩니다. 15세기 당시 대항해시대에 포루투칼은 동방 항해로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스파이 칸티노가 포르투칼의 지도를 베껴낸 것이 바로 [칸티노 세계지도]입니다. 이때부터 분명하게 신화와 불확실 표현은 제거되고 동방 무역의 관문인 말라카 해엽으로 가는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방무역로의 개척은 당시 유럽의 패권을 바꾸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신흥계급의 등장과 사회 변화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외방도, 1883]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동아시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준비를 19세기 말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왔습니다. 아직 아직 한일합방하기 이전부터 한국, 중국, 필리핀 환태평양지역의 동아시아국가에 비밀 첩보 측량사들을 보내서 거의 12만부에 달하는 지도를 제작하였습니다. 일본은 패전후 이를 다소각하고자 하였지만  일본 토호쿠 대학 서고에서 사본이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육군 참모분부 공병 카이츠 미츠오 대위가 1883 비밀리에 한국에 들어와  우리나라를 측량하였고 지도 그렸다고 합니다. 제작기간이나 속도로 볼때 매우 고도로 훈련된 전문 측량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반도에 대한 지배 우위권을 두고 왕실과 청나라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던시기, 결정적으로 조선에서 일본이 우위에 서게된 사건이 동학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군의 병력을 요청한 사건이었습니다. 동학군은 상당한 기세로 서울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지만 인천을 통해 들어온 일본군은 매우 정확한 지리적 정보와 근대식 무기를 가지고 아주 간단하고 처참하게 동학군을 제압하였습니다. 

이때의 지도는 정확한가? 그리고 정확함은 누가 누구를 위해 획득한 것인가? 라고 질문해 있습니다.







[미군 탱크길 지도, 1951]
경부고속도로 1 국도는 유서가 깊은 도로입니다. 한국전쟁때 미군이 개입하면서 미군이 탱크를 가지고 서울로 진격하는데  우리나라 지형이 동고서저지형이라 낙동강을 제외하고 강이 주로 동서 횡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탱크가 도하하기 매우 힘든 지형인데 탱크 도하를 위해 1951 미군이 탱크길 지도를 만드는데 1번라인이 오늘날의 1 고속국도, 경부고속국도입니다. 이렇게 지도는 역사와 실재 땅에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이렇듯 소위 지도의 '객관성' 전혀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면 애초에 다른방식으로 접근한 지도들도 있다는 것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지도들의 공동체적 상상력은 지도의 권력관계를 해체하고 주민 주도로 재구성 있다는 저희의 생각에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애보리진 지도]
오스트레일리아의 척박한 땅은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에게도 무척 황량한 풍경이었습니다. 많은 유럽인들 오스트레일리아의 황무지를 보고 전혀 특색이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을 특색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경관은 하나하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모든 나무, 모든 얼룩 모든 구멍과 틈은 각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지도 위대한 창조의 시대 사건과 이야기들을 풍요롭고 복잡한 상상의 지도로 표현하였습니다.

[캐나다 원주민 키크산 구술지도]
캐나다 원주민인 킷크산 족은 종이에 지도를 그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구술로 고유 영토 지도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연어의 ' '어머니의 ' '숲의 계곡'  '검은 돌의 들판' 같이 지형을 부르고 입에서 입으로 기억되는 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이 죽으면 그들은 부분의 지도를 잃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1402 ]
조선 개국 초기 아랍의 <성교광피도> 중국의 <혼일강리도> 우리나라의 이회가 편찬한 <팔도지도> 합쳐 당시 알려진 세계를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편집한 당대 유래 없는 세계지도입니다. 이는 1459 베니스의 프라마우로 지도보다 50여년은 앞선 것입니다. 조선은 이후 주자성리학이 사회이념으로 굳어지면 도리어 아라비아와 서역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이렇듯 지도는 세계관의 산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Q4. 지도가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면 실재 장소를 점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지도로 만들수는 없을까?

"지도는 자연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며 보편 진리의 중립적 전달자도 아니다. 지도는 나름대로 목적을 갖는 대변인이다. 지도는 결코 지구의중립적인 묘사가 아니다.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벌인 싸움의 낙인이 선명하게 찍힌 사회적 산물이다. " ( 레니쇼트)

이렇듯 지도는 중립적인 미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관점과 각기 다른 제작자들의 이유과 동기 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사회적 산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지리학자 애드워드 랠프는 "집을 짓거나 새로운 땅에 정착한다는 것은 아주 근본적인 일이다. 세계를 다시 세우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람이 살지않는 지역에 처음으로 들어간 시점에 제일 먼저 하는 행위는 눈에 띄는 특색에 이름을 붙이는 "이라고 하며 이를 '황무지의 인간화' 라고 말하였습니다.
현시점에서 인류의 60퍼센트가 도시에 살고 있고 대부분 인간이 자신의 경관을 만들어가는데 기여하거나 개입할 없는 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공간이라는 미디어가 제시하는 취향과 욕망을 소비할뿐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수 없는 한치의 틈도 없는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하나 자기 마음데로 박을수 없는 콘크리트 공간에서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근대이후 지도 제작자들은 상당수가 통치와 개발을 목적으로 제작하연는데  실제 땅이 변하고 지도가 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지도 위에 선과 구역이 지정되고 다음에 실제 땅이 바뀌는 방식으로 지도를 사용해 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재개발 지구 같은 경우 먼저 국가에서 영역을 지정하고 기업들에게 사업토지를 분할해 주면 그때부터 용역이 들어가서 설득과 회유 도장을 받으러 다닙니다. 이는 고스란히 고액의 사업비용으로 청구되고 주민들을 재개발을 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도시의 경관이 이런 방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일종의 지도 위의 시뮬라크르가 실제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 정보 속에서 실제로 땅을 점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보는 익명의 숫자나 네모 혹은 아예 생략 됩니다. 지도는 태생부터가 축적이 11 아닌이상 선택과 생략을 통해 사실을 왜곡할 밖에 없는 매체입니디다. 어떤 장소는 표기에서 선택되고 어떤 장소는 선택되지 않는가? 이는 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거나 지도를 제작하는 집단의 목적에 따라 달리 됩니다.

"정치적으로 위협적이고 심미적인 면에서 매력없는 지리적 실체들을 생략하거나 토목 공사자 지질학자 행정가 토지 개발업자의 관심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의 지형 기본도는 실재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삶의 올바른 방향을 걱정하는 다양한 집단에게는 사실상 기존이 되지 못하고 있다."  (마크 몬모니어)


그래서 인사이트씨잉을 지도를 수집할때 객관적이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정보를 취사 선택하는 것이아니라 주민들의 구술과 기억 그리고 그분들의 인간 관계망을 타고 들어가 지도를 제작하고자 하였습니다. 세계관계를 맺으며 실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실재를 재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여행을 통해서 실제 장소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와 다른 -이는 주로 미디어나 언론 매체가 지시하게 되는데- 이야기들을 발견할 있었다는 점입니다.  개인들의 기억을 따라가다보면 이야기의 뒤도 않맞고 역사적으로도 기억이 부정확한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삶을 미화하려는 무의식도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들을 따라가다 보면 예기치 않은 곳에서 삶과 장소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땅에서 수년에서 십년에 걸쳐 살아오면서 몸으로 땅의 주름을 새겨온 삶에 대한 조심스런 경외감 같은 것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인사이트씨잉의 프로젝트 작업들 소개

2012 <선감도 프로젝트> 경기창작센터 123프로젝트

2013 <창동여지도>  창동창작스튜디오 지역연계프로젝트 개인전

2014 <잇태원: 감각의 지도> 프로젝트 , 리움 삼성미술관 10주년 기념, 교감

2015 <페시트: 성수동 프로젝트>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사물학II 제작자들의 도시

2015 <막계삼각뿔> 과천국립현대미술관, 막계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