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변두리 주민을 위한 디자인, 농막








쌀의 독백: 일시적 식구
Monologue of Rice: Temporary Mouths to feed
2018518 – 527
경기상상캠퍼스





"여기서 텃밭농사 지은 지 10년 되었어. 물이 안 나와서 힘들어ᅠ
수도는 니기랄 돈이 한 달에 백만 원씩 나오는데 어떻게 ? 
농사 뭐 하러 지어? 차라리 사먹는게 낫지. ᅠ
물이 잘 나오면 돈이 들어도 지하수 파겠는데 팠다가 안 나오면 말짱 황이잖아. 
옛날에는 지하수 물이 잘나왔어. 
재활용센터 짓고 나서는 잘 안 나와. 저게 지하 8층이야. 
지하에 물줄기가 다 끊긴 것 같아. 
방수하고 머하고 하는 바람에 물줄기가 잘려 버렸어.” 

(중랑구 거주 40년, 최 씨 어르신, 70대)





농지법 시행령상의 '농막'의 정의는 “농작업에 직접 필요한 농자재 및 농기계 보관, 수확농산물 간이처리 또는 농작업 중 일시휴식을 위하여 설치하는 시설”(전체면적 20㎡ 이하이고, 주거목적이 아닌 경우로 한정한다.)이다.
하지만 도시 변두리 지역의 실재 농막의 숨은 정의는 좀 더 복잡하다. 유명인사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자숙의 기간 숨는 공간이기도 하며, 주말 농사를 짓는 도시민들에게는 주말에 친구들과 모여 잔치를 열 수 있는 아지트가 되기도 한다. 또한 불법이긴 하지만 상당수의 농막은 실제 오갈 곳 없는 많은 사람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 실제로 서울 변두리의 그린벨트 지역에서 농막을 지어 놓고 도시와 경계의 삶을 오가는 70대 어르신을 우연히 만났다. 평일에는 냉동차 운송 일을 하시고 일이 없는 날이면 농막에 나와 밭을 돌보신다. 땅 주인에게 일 년에 쌀 한 가마니 정도 세를 내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든 나가라면 나갈 수 있는 마음으로 솥도 걸어놓고 화목난로도 설치하고 라디오와 냉장고도 가져다 놓는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함께 모여 한 잔 나누시는 거점이 된다. 이렇듯 서울 변두리 지역 및 경기도 지역의 '농막'들은 단순한 농사 부대 시설의 의미를 넘어서 도시 경계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자기 삶의 자리를 마련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형태의 농막을 사회적 디자인으로 보급 가능한 모듈 형태로 제작해 보고자 하였다. 가변적인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 가능하도록 쉽게 분해, 조립, 이동이 가능하며 거주의 기능보다는 커뮤니티 거점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형태이면서도 사적 공간으로 은폐가 가능한 형태로 디자인하였다. 일단 분해하면 패널로 포개져서 1.5t 트럭으로 한 번에 배송할 수 있고 성인 2명이 한나절이면 조립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였다.





이번 “쌀의 독백” 전시의 일환으로 실험적인 성격으로 농막 건축 모듈을 제작하였다. 궁극적으로는 보편적인 형태로 가기 위한 실험 모듈 적인 성격으로 제작되었다. 좀 더 가벼워져야 할 필요와 재료비가 감축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실제 이번 실험 모듈은 여러 시행상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시 기간 그 역할을 독특하게 감당하였다. 전시 오픈하는 날 예상치 못한 봄비가 쏟아졌고 자연스레 비를 피할 수 있는 차양 아래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전시 기획자의 준비로 털레기 매운탕과 미꾸라지 튀김이 준비되었다. 비 오는 날 잊을 수 없는 맛과 분위기의 오프닝이 되었다.









전시기간 경기상상캠퍼스 일대에서는 ‘수원 국제연극축제’가 진행되었다. 다양한 부대행사가 열리고 많은 시민이 방문하였다. 기능을 알 수 없는 숲속의 설치 구조물은 자연스레 익명의 시민들이 쉬어가는 거점이 되었다. 발길을 멈추고 농막 앞뒤의 트여 있는 풍광을 감상하고 익명의 타인들이 묘하게 공존하고 섞이는 시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주택이 공장에서 모듈로 완성돼서 배송 후 조립되는 프리패브 공법이 건축 최근 들어 상당히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농막은 친구 1, 2인이 손수 지을 수 있는 만만함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프리패브 건축과는 지향점이 조금은 다르다. 여전히 프리패브 건축은 비싸고 전문적이고 완전한 건축을 지향한다.








이번 기획은 불완전하지만 현실적 형편상 자기 삶의 자리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힘으로 자기 삶의 자리를 만들고 커뮤니티가 함께 더불어 이용할 수 있는 ‘건축적 공동성’의 원형을 회복하기 위한 씨앗으로 이번 농막 모듈을 제작하고자 하였다.
변두리 지역의 삶의 현장에서는 이미 앗시바로, 비닐로, 샌드위치 패널로, 혹은 버려진 스티로폼으로 이러한 주체적인 ‘자리’ 만들기가 실행되고 있다. 언뜻 도시를 관리하는 관료나 외지인의 시각에서 보면 지저분해 보이고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해야 할 불법적 요소로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거대한 국가 복지 기구가 거대한 비용을 들여서 이루고자 해도 이루기 어려운 인간다운 삶을 누릴 가능성이 그 지저분한 자리 안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울 변두리 지역에 노년 세대를 위한 새 공공임대아파트를 지나가면서 보게 되었다. 건물도 새것이고 조경도 잘되어 있었다. 높은 아파트 베란다 틀에는 가을이 지날 무렵이라 무청이 가득 널려 있었다. 예쁘게 조경이 된 아파트 공원 갑판에는 빨간 고추가 널려 있었다. 그분들의 몸에 새겨진 행동 기억과 새로운 공간이 만날 때 그분들은 젊은 세대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장소를 변형해서 사용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깨끗한 엘리베이터가 있고 헬스기구가 있는 건물이 아니라 더불어 어울릴 수 있는 만만한 마당이 아닐까? 

| 2018.5 최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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