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Branch Off, Graduation exhibition



Branch Off



In the restaurant, Oil on canvas, 162x130cm, 2005


작업 동기


20세기 끝자락에 태어나 21세기 초반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겪는 변화와 혼란은 그야말로 극심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 빈번하게 대두되고 있는 문제는 아마도 양극화와 분화의 문제일 것이다. 기술이 진보하고 문명이 발전할수록 빈부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심해지고,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세대간의 차이, 문화적 혜택의 차이, 교육의 차이 그리고 이러한 차등의 결과로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데까지 이른다. 이는 너무나 식상한 문제라서 다시 이야기하기에 민망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는 식자들이 앞에서 민망하다 새롭다 논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는 문제들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분화된 세상에서 마음 편하게 살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관심이다. 무관심이라는 기재는 아주 세련된 옷으로 포장되어 아주 편리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분화, 편린화의 문제는 예술이라는 영역에서는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앞 세대의 대의명분, 이데올로기, 교의 등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새로운 세대들은 그 어느 제약에도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한다. 거대 담론 보다는 소소한 것에 눈을 돌리고, 형이상학적인 것보다는 현세적이고 육체적인 것에 눈을 돌린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것 혹은 터부시되어왔던 것들은 주목의 대상이 되었고, 이거 아니면 저거다 식의 딱딱한 논리는 조롱하고 좀더 우아하고 고품격적인 태도로써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를 제시하였다. 미국의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는 이러한 포스트 모던에 특징에 대해서 교의적인 발언을 하였다.

“나는 순수하기보다는 잡종적인, 깨끗한 손보다는 타협에서 비롯된, 굴곡 없기 보다는 일그러진, 명확하게 구별되기보다는 모호한, 거역성을 지니면서도 비개인적인, 독창적이기 보다는 관습적인, 단순하기보다는 장황한 것을 좋아한다.”

즉 예술은 스스로 자신을 제약할 만한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감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거의 무한 데로 확장시켰다. 그런데 웬일인지 자유로 인해 발생하는 긍정적인 측면 못지않게 분화 분절을 넘어서 고립에 이르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현대미술은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편으론 새로운 세기의 요구에 부응해 미술계가 한창 ‘소통’이란 주제로 시끌벅적 했지만 이 또한 너무 1차원 적인접근에 머무르거나 그 개념이 모호하였다. 




At the street, Oil on canvas, 130x97cm, 2005


편린들을 주워 모으기


나와 같이 사연도 없고 고생도 없는 새로운 세대들은 어중간한 시기에 끼어있는 듯 하다. 아버지 세대의 치열함도 없고 삼촌세대의 진지함도 없고 다가올 세대에게는 그리 신선한 것이 없어 보이는 우리세대의 태도는 어정쩡함 그 자체이다. 이제 그 어정쩡한 정체성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으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내가 살고 있는 동시대 삶의 현장으로부터 출발한다. 특히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만 같은 이들에 대한 주목에서 시작한다. 이런 주목에서부터 나의 작업들은 현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다소 우스꽝스럽고 현실에서 별로 보기 힘들 것 만 같은 장면들은 사실 허구(fiction)가 아닌 철저한 실재상황(non fiction)에 근거한 드로잉들이다. 나는 동시대의 리얼리티를 우스꽝스러움, 가벼움, 찰나, 사소함으로부터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리얼리티를 담는 작업이 어떻게 분화된 세상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겠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대부분의 예술계의 선배들은 예술은 탈 목적성을 띌 때에만  미적경험을 끌어낸다고 말하면서 칸트 이래로 이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물론 예술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작가가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게 주어진 재능을 가지고 노동하고 스스로에게 충실하다면 그것이 시대에 충실한 것이 될 것이다. 





 In the bus, Oil on canvas, 97x162cm,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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