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인사이트씨잉 특강 : 감각의 지도_지도와 장소성
○ 일시 : 2017년 10월 31일
○ 장소: 서울시 성북구 국민대학교 예술관 116호
Q1. 인사이트씨잉 어떻게 시작되었나?
인사이트씨잉은 2012년에 경기도지역에 모 작가 작업실에 친한 선후배 작가들이 모였다가 우발적으로 시작된 모임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 회의 겸 수다 떠는 모임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졸업 후 힘든 창작자로써의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목적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 한해 동안 여러 프로젝트 기획안들을 작성하였고 개중에는 운좋게 1차 심사를 통과하였지만 여러 번 2차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꽤많은 미완의 프로젝트 기획서들이 축적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가을 ,나광호 작가가 입주해 있던 경기창작센터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있어서 거기에 협력 팀으로 참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Q2. 작업의 주제 WHAT?
저희 팀은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프로젝트들을 수행해 왔습니다. 특히 장소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지도라는 개념 자체에 관심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연인이 통화할때 주로 첫 마디는 "어디있어?"입니다. 상당이 복잡한 뉘앙스를 풍기는 질문이지요. 이때 '어디에 있다'라고 대답할때 특별히 신중해야 합니다. 이렇게 어디에 있다라는 질문은 어떤 맥락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이야기들을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장소는 단순히 독립적인 하나의 부분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문화적 반응 방식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구성 요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영어표현에서 'take place'라는 표현이 '사건이 발생하다. 일어나다.'라는 뜻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공간은 상당부분 위계, 권력 관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흔히 일반적인 사무실의 책상 구조만 살펴봐도 알수 있습니다. 팀장님이나 부장님의 자리는 주로 창을 등지고 모든 아래 직원을 감시할수 있는 구조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팀장님은 자리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이동 할 때 모든 직원들의 책상에서 무슨일이 처리되고 있는지 감시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는 불가능하지요. 한 가정에서도 가구의 배치를 결정할수 있는 사람이 참 권력자라고 할수 있습니다. 집에서 주로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약자들은 의자하나 자기 마음데로 옮길 수 없게 됩니다. 이 공간의 범위를 좀 더크게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요? 도시의 라인과 윤곽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요? 한 나라의 국토를 조정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사람이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산다는 것은 일정한 위계쳬계 안으로 들어가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소를 둘러싼 경험과 이익 관계들은 권력관계에 따라 매우 첨예하게 나뉘게 됩니다.
Q3. 지도는 실재를 반영하고 보여주는 중립적인 도구 인가?
특히 장소를 2차원 평면 위에 표기하는 '지도'는 문명의 형성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지도의 역사는 프톨레마이오스 이래 신화와 미지의 변방을 지워가고 소위 명확성을 획득해 온 역사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가 만들었나? 무엇을 위해 만들었나? 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살펴보면 지도의 맥락에 대해 좀더 확실히 이해할수 있게 됩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해러퍼드 마파문디]
다음은 대표적인 중세시대 세계지도라고 할수 있는 '해러퍼트 마파문디'입니다. 오랫동안 성당 안에 숨겨져 있다가 발견된 지도 입니다. 이때의 세계는 물론 유럽 중심의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세계지도 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동방에 예루살렘 너머지역을 표기하기는 표기하였는데 그곳에 대해 정보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채워 놓았다는 점입니다. 뿔이 있는 괴물, 손과 발이 나무로 되어 있는 나무 인간 등.. 심지어 저 너머에 악마와 괴물들이 살고 있는 미지와 두려움의 세계를 나름의 상상력으로 재미있게 표시해 놓았습니다. 모르는 곳을 모른다라고 표시하지 않고 자신들의 세계관안에서 상상력으로 채워 놓았던 이런 현상은 동양의 도교의 경전 중<천해경>을 바탕으로 제작된 세계지도,<천하도>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됩니다.
[칸티노 세계지도, 1502]
근대지도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이탈리아 스파이 칸티노의 지도입니다. 이때부터는 중세지도에서 발견되는 신화와 상상력의 요소는 제거됩니다. 15세기 당시 대항해시대에 포루투칼은 동방 항해로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스파이 칸티노가 포르투칼의 지도를 베껴낸 것이 바로 이 [칸티노 세계지도]입니다. 이때부터 분명하게 신화와 불확실 한 표현은 제거되고 동방 무역의 관문인 말라카 해엽으로 가는 길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방무역로의 개척은 당시 유럽의 패권을 바꾸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신흥계급의 등장과 사회 변화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외방도, 1883]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동아시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준비를 19세기 말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왔습니다. 아직 아직 한일합방하기 이전부터 한국, 중국, 필리핀 등 환태평양지역의 동아시아국가에 비밀 첩보 측량사들을 보내서 거의 12만부에 달하는 지도를 제작하였습니다. 일본은 패전후 이를 다소각하고자 하였지만 일본 토호쿠 대학 서고에서 사본이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육군 참모분부 공병 카이츠 미츠오 대위가 1883년 비밀리에 한국에 들어와 우리나라를 측량하였고 지도 그렸다고 합니다. 그 제작기간이나 속도로 볼때 매우 고도로 훈련된 전문 측량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반도에 대한 지배 우위권을 두고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던시기, 결정적으로 조선에서 일본이 우위에 서게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급한 조선왕실이 동학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군에게 병력을 요청한 사건이었습니다. 동학군은 상당한 기세로 서울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지만 인천을 통해 들어온 일본군은 매우 정확한 지리적 정보와 근대식 무기를 가지고 아주 간단하고 처참하게 동학군을 제압하였습니다.
이때의 지도는 정확한가? 그리고 이 정확함은 누가 누구를 위해 획득한 것인가? 라고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군 탱크길 지도, 1951]
경부고속도로 1번 국도는 유서가 깊은 도로입니다. 한국전쟁때 미군이 개입하면서 미군이 탱크를 가지고 서울로 진격하는데 우리나라 지형이 동고서저지형이라 낙동강을 제외하고 강이 주로 동서 횡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탱크가 도하하기 매우 힘든 지형인데 탱크 도하를 위해 1951년 미군이 탱크길 지도를 만드는데 그 1번라인이 오늘날의 1번 고속국도, 즉 경부고속국도입니다. 이렇게 지도는 역사와 실재 땅에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식민제국주의와 또 다른 전통의 지도
이렇듯 소위 지도의 '객관성'이 전혀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면 애초에 다른방식으로 접근한 지도들도 있다는 것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지도들의 공동체적 상상력은 지도의 권력관계를 해체하고 주민 주도로 재구성 할 수 있다는 저희의 생각에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애보리진 지도]
오스트레일리아의 척박한 땅은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에게도 무척 황량한 풍경이었습니다. 많은 유럽인들 오스트레일리아의 황무지를 보고 전혀 특색이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을 그 특색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각 경관은 하나하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모든 나무, 모든 얼룩 모든 구멍과 틈은 각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지도 위대한 창조의 시대 사건과 이야기들을 풍요롭고 복잡한 상상의 지도로 표현하였습니다.
[캐나다 원주민 키크산 족 구술지도]
캐나다 원주민인 킷크산 족은 종이에 지도를 그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구술로 된 고유 영토 지도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연어의 강' '어머니의 강' '숲의 계곡' '검은 돌의 들판' 과 같이 지형을 부르고 입에서 입으로 기억되는 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한 사람이 죽으면 그들은 한 부분의 지도를 잃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1402 ]
조선 개국 초기 아랍의 <성교광피도> 중국의 <혼일강리도> 우리나라의 이회가 편찬한 <팔도지도>를 합쳐 당시 알려진 세계를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편집한 당대 유래 없는 세계지도입니다. 이는 1459년 베니스의 프라마우로 지도보다 50여년은 앞선 것입니다. 조선은 이후 중국 중심의 주자성리학이 사회이념으로 굳어지면 도리어 아라비아와 서역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이렇듯 지도는 세계관의 산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Q4. 지도가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면 실재 그 장소를 점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지도로 만들수는 없을까?
"지도는 자연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며 보편 진리의 중립적 전달자도 아니다. 지도는 나름대로 목적을 갖는 대변인이다. 지도는 결코 지구의중립적인 묘사가 아니다.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벌인 싸움의 낙인이 선명하게 찍힌 사회적 산물이다. " (존 레니쇼트)
이렇듯 지도는 중립적인 미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관점과 각기 다른 제작자들의 이유과 동기 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사회적 산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지리학자 애드워드 랠프는 "집을 짓거나 새로운 땅에 정착한다는 것은 아주 근본적인 일이다. 세계를 다시 세우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람이 살지않는 지역에 처음으로 들어간 시점에 제일 먼저 하는 행위는 눈에 띄는 특색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하며 이를 '황무지의 인간화' 라고 말하였습니다.
현시점에서 인류의 60퍼센트가 도시에 살고 있고 대부분 인간이 자신의 경관을 만들어가는데 기여하거나 개입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공간이라는 미디어가 제시하는 취향과 욕망을 소비할뿐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수 없는 한치의 틈도 없는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못 하나 자기 마음데로 박을수 없는 콘크리트 공간에서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근대이후 지도 제작자들은 상당수가 통치와 개발을 목적으로 제작하연는데 실제 땅이 변하고 지도가 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지도 위에 선과 구역이 지정되고 그 다음에 실제 땅이 바뀌는 방식으로 지도를 사용해 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재개발 지구 같은 경우 먼저 국가에서 영역을 지정하고 기업들에게 사업토지를 분할해 주면 그때부터 용역이 들어가서 설득과 회유 도장을 받으러 다닙니다. 이는 고스란히 고액의 사업비용으로 청구되고 주민들을 재개발을 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도시의 경관이 이런 방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일종의 지도 위의 시뮬라크르가 실제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 정보 속에서 실제로 그 땅을 점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보는 익명의 숫자나 네모 혹은 아예 생략 됩니다. 지도는 태생부터가 축적이 1대1이 아닌이상 선택과 생략을 통해 사실을 왜곡할 수 밖에 없는 매체입니디다. 어떤 장소는 표기에서 선택되고 어떤 장소는 선택되지 않는가? 이는 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거나 지도를 제작하는 집단의 목적에 따라 달리 됩니다.
"정치적으로 위협적이고 심미적인 면에서 매력없는 지리적 실체들을 생략하거나 토목 공사자 지질학자 행정가 토지 개발업자의 관심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의 지형 기본도는 실재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삶의 올바른 방향을 걱정하는 다양한 집단에게는 사실상 기존이 되지 못하고 있다." (마크 몬모니어)
그래서 인사이트씨잉을 지도를 수집할때 객관적이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정보를 취사 선택하는 것이아니라 주민들의 구술과 기억 그리고 그분들의 인간 관계망을 타고 들어가 지도를 제작하고자 하였습니다. 세계관계를 맺으며 실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실재를 재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여행을 통해서 실제 그 장소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와 다른 -이는 주로 미디어나 언론 매체가 지시하게 되는데-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개인들의 기억을 따라가다보면 이야기의 앞 뒤도 않맞고 역사적으로도 기억이 부정확한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삶을 미화하려는 무의식도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들을 따라가다 보면 예기치 않은 곳에서 삶과 장소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땅에서 십 수년에서 수 십년에 걸쳐 살아오면서 온 몸으로 그 땅의 주름을 새겨온 삶에 대한 조심스런 경외감 같은 것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인사이트씨잉의 프로젝트 작업들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