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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Dancing Flow of Microorganisms

2016 'Bibilunduck' Project (2) Trial and Error


[시행착오]
무턱대고 일을 추진하였는데 생각보다 넘어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컨테이너를 생각했을 때 일반적으로 시골에 적치되어있는 흐릿한 회색에 녹이 슬어있는 농막과 같은 형태는 피하고자 하였다. 그런 방식으로 시골 경관에 나의 짐짝들을 처리하기 위해 배설물을 적치하는 방식은 한 공간에 대한 외부인의 폭력이라고 생각되었다. 최소한의 개조와 개입을 통해 시골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그런 데로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컨테이너건축을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비용이 문제였다

그래서 스틸하우스 건축이나 컨테이너를 전문적으로 개조하는 업체에 알아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제대로 개조하려면 평당 300만원은 드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컨테이너 한 동이 6평이니 1800만원, 두 동이면 3600만원이 드는 것이었다. 그럴만한 여유도 없거니와 그렇게 지을 바에는 조금 더 비용을 들여서 경량목조건축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애초에 빛을 내서 건축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가진 예산은 서울에서 뺀 작업실 보증금 1000만원이 다였다. 1000만원으로 흉물스럽지 않은 40m2의 컨테이너 두 동을 개조한 건물을 지을 생각이었다.




한계를 긋고 나니 이런저런 옵션을 빼게 되었다. 그러나 양보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는데 컨테이너 건축의 최대 단점인 단열과 결로문제였다. 철제 표면은 특성상 외부온도와 실내온도차이가 많이 날 때 철판에 이슬이 맺혀 흐르는데 이게 결국 내부 합판들을 썩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들도 결국은 곰팡이가 슬게 된다. 해결책은 두 가지인데 우레탄 폼 시공으로 철판 안쪽에 시공하면 결로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비용이 400만원이 추가되어서 이건 탈락시켰다. 두 번째 해결방법은 환기를 자주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내부온도랑 외부온도가 차이가 거의 없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골이라는 특성상 내가 자주 내려가거나 수시로 점검할 수도 없고 짐들 보안 문제도 있어서 창문을 열어두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자그마한 프로젝터 창문을 내는 것을 생각했다. 컨테이너 전면과 후면으로 높이 차이를 두어서 작은 프로젝터 창문을 달면 더운 공기는 아래서 위로 가기 때문에 의해 자연스럽게 공기가 순환되어 더운 공기가 위로 빠지고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잠시 비워두어도 누가 넘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유리문을 깨고 들어오면 별수 없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진 그 정도로 값나가는 물건은 없었다. 그리고 햇빛을 최대한 많이 실내로 들이기 위해 남측으로 커다란 전면 유리 샷시를 달기로 했다. 샷시 유리는 보통 12mm유리를 다는데, 특별히 아파트 샷시와 같은 22mm유리로 요청했다. 컨테이너 내부 단열재도 보통 3T인데 5T로 두껍게 했다. 물론 충분하지 않는 두께이지만 대한민국 중부권에서 권장하는 내장재 두께 기준에는 합한 것이었다. 컨테이너에 아무리 두껍게 단열재를 붙인다 해도 결로는 어차피 막을 수 없고, 샷시 두께나 벽 두께가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두껍게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정도 선에서 절충하기로 했다.





그리고 천장의 뜨거운 열은 경험상 단열재를 두껍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컨테이너 두 동을 1,2층으로 쌓아서 2층은 창고 1층을 작업실로 사용하기로 했다. 2층은 그 동한 작업들과 재료들을 쌓아두는 창고로 사용하니 여름에 뜨거워도 상관이 없고 2층 때문에 1층은 상대적으로 상당한 단열효과를 얻게 된다. 그리고 두 개의 컨테이너를 120cm정도 빗겨 쌓아서 앞쪽에서는 차양효과를, 뒤쪽에서는 계단이 올라가는 데크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복잡한 요구를 컨테이너 업체에 말하니 사장님이 질색을 하였다. 그리고 얼마 큰 돈 남기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을 못하겠다고…… 컨테이너는 그냥 싸게 갖다 놓는 것이지 이렇게까지 하냐고 이일 안 하겠다고 퇴짜를 맞았다. 역시 남들이 잘 안 하는 방식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방식으로 하려는 나의 시도는 환영 받지 못했다. 조금 죄송하긴 했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한 다른 비전과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었으므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제값 다 들여서 비싸게 지을 수도 없었다. 몇 개의 다른 업체를 수소문한 끝에 이런 까다로운 개조 요구에도 흔쾌히 친절하게 진행 해 주는 업체를 찾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실용적인 디자인 안에서 비용과 최대한 타협해서 계단과 데크를 제외하고 컨테이너 두 동과 배달 설치비용까지 9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철제계단과 2층 데크까지 공사하면 290만원 정도가 추가로 들게 된다. 예산이 없기 때문에 제외시켰고, 텅텅거리는 철제보다 나무색깔이 더 어울릴 것 같아서 계단과 데크는 목재를 사서 손수 만들기로 하였다. 그리고 내부는 바닥에 얇은 비닐 장판이 깔려 있었으나 아주 빈약한 것이어서 작업 중 물이 바닥에 흐르면 바닥 합판이 그대로 썩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렇다고 제대로 바닥구조를 개조하고 타일을 깔려면 그것도 100만원이 추가로 들게 된다. 그래서 그냥 손수 폴리우레탄 코팅을 하기로 하였다. 또 작업 도구들과 재료들을 위해 효율적인 수납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부 인테리어 가구도 가장 저렴한 OBS 합판으로 직접 만들기로 하였다.

비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컨테이너 구매 및 개조비용

컨테이너 기본 X  2 .......................... 5,600,000  

전면샷시 1, 프로젝터 창문 9 ...........2,154,000

단열, 벽재, 바닥재 추가 ........................1,310,000

외부 도장............................................... 400,000

합계..................................................  9,464,000  
                                              (할인가) 9,000,000



(2) 설치 및 인테리어 아웃테리어 공사


설치크레인...........................................   450,000                                                                                

철물 및 부자재 ...................................... .226,740

바닥몰탈우레탄  ..................................... 151,000

목재(계단,데크,내부 가구)..........................568,000                                                              

기타(경계석, 설치기사님 팁, 간식)...............129,000                                                    

합계......................................................1,524,740

총계 (1)+(2)                                     10,524,740

  




목표했던 1000만원 근처에서 컨테이너 개조 및 설치계단데크인테리어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인테리어아웃테리어 비용은 대부분 노동을 나 혼자 하였기 때문에 인건비는 책정하지 않았다그리고 순수하게 재료 비용만 책정하였다.참고로 컨테이너 설치시 예상치 않게 크레인 비용으로 45만원이나 들었다는 것을 말해두고자 한다. 원래는 대지 상태가 좋으면 지게차로도 충분이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컨테이너 업체에서 거져 놓아주거나 5만원이 든다. 그런데 대상 부지가 임야를 돋아 놓은 마사토 땅인데, 전날 비가 와서 거의 진흙탕이 되었다. 반나절에 20만원하는 3톤 크레인을 불렀지만 차가 바퀴가 빠지고 들어올 수 없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사님에게 기름값 하시라고 5만원 주고 돌려 보냈다. 그리고 10톤짜리 맹꽁이크레인을 다시 불렀다. 한 시간 반 정도 후에 드디어 맹꽁이 크레인이 자태를 드러내었다. 좁은 시골마을 입구를 들어올 때 전봇대에 부딪힐 뻔하기를 여러 번…… 앞 뒤로 움직이며 크레인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며 겨우 들어왔다. 그리고 거대한 바퀴는 진흙에 빠지지 않았고 설치에 성공했다. 미리 주문한 경계석을 바닥에 놓긴 하였지만 진흙이 된 땅에 서 수평을 맞추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그래서 우연히 현장에 있던 폐괴목을 이용해서 어렵게 수평을 맞추었지만 깔금 하지는 않았다. 컨테이너 놓을 때 토지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고 토지 평탄화와 수평작업을 미리 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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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폭격 후 웅덩이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_2016] “실험놀이터” 실행을 위한 사전 연구 1. 프로젝트 개요  ○제           목 :   (가칭) “실험놀이터” 실행을 위한 사전 연구 ○기           간 :   2017.10.01 – 12.22 ○장           소 :   경기도 oo군 일대 ○사업     내용 :   지역 기반 리서치 연구, 책자 발간, 시뮬레이션 모형 제작, 전시  ○주관 및 후원 :   oooo재단 oo문화사업단 ○기획 및 실행 :   최형욱(시각예술가, 예술교육가) 2. 기획의도 놀이를 잃어버린 사회 ‘논다’는 행위는 “개인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을 도모”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화적 활동입니다. 놀이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배우며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행위입니다. 사실 아이들만 노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창조적인 일을 하는 어른들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 후 사회가 복원되는 시기 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지만 지금의 어른들에게는 느슨한 공간과 시간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조직하고 만들고 탐험하는 행위를 통해서 아이들은 아무것도 기댈 것 없는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고 사회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한 어른들이 보기에 스스로 놀이를 조직하고 자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요즘 아이들은 놀 줄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관점을 약간 달리해 보면 모든 세대의 아이들은 언제나 놀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이들의 욕망을 제거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어른들입니다. 도시의 장소는 ...

2011 Manuel Wood Signboard Workshop_Bonghwa traditonal market

  봉화시장 간판 제작 워크숍 2011  기   간 :  2011. 4.-2011.9 참여자 : 봉화시장 상가 사장님들(한일떡방앗간, 송이식당, 아셀건강원. 로얄분식, 고향손두부, 내성기름방, 신솔반점,  구일식품) 기획 및 실행 : 최형욱   봉화시장은 상가 주인들의 상업공간이자 생활공간다. 고유한 정체성을 담고있는 삶의 전부라고 할수 있다. 어떤분들에게는 어린 시절 부터 자라온 고향이고 어려운 시절 기근을 넘기기 위한 투쟁의 공간이고 자수성가하여 자식들을 중산층으로 진입시킨 저력의 공간이기도 하다. 봉화시장은 역사적으로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한의 물자와 내륙의 물자를 연결시켜주는 상업적인 요충지였다. 그러나 도로망의 확충과 인근 도시들의 지리적 경제적 지형도가 바뀌면서 지금은 작은 시골장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 시장은 지역 커뮤니티에서 단순한 상거래 기능 이상으로 지역 정체성을 연결하는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다. 이런 역사성과 지역 정체성의 마당인 봉화시장에서 상인들과 함께 그들의 상가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공 간판을 함께 제작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12주 코스로 기초적인 목공 교육부터 간판제작, 상업공간에 필요한 소품가구까지 손수 제작하는 과정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상인 분들은 본인 가게에 대한 본인 고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를 확장하거나 실현하실수 있도록 작가는 돕는 역할을 하였다. 간판 디자인은 전적으로 상인들의 생각을 따라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