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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Dancing Flow of Microorganisms

2016 As a small spark lights up the whole thing: Choi Heong-uk's Art World_Curator Lee Jin-myeong's Criticism



이진명 (간송미술문화재단 큐레이터)



최형욱 작가는 2010년도를 기점으로 프로젝트 작업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보통 초반의 젊은 작가들은 으레 자기 세계를 내면에서 끄집어내려는 부단한 노력부터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나간다. ‘세계에 대한 사고(thought about the world)’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최형욱 작가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세계와 함께 사고(with the world)’한다. 그것은 ‘예술이 무엇인가?(What is art)’라는 전제보다도 ‘예술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In which direction is it going)?’,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 될 수 있는가?(What can become of it?)’라는 물음으로 나아가려는 시도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토록 어려운 방향의 질문을 시도하는 것인가? 그것은 예술 자체가 무장하고 있는 순수함이라는 가장을 벗어던지고 인간의 영원한 질문인 삶의 문제를 예술이라는 도구로 다루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방향성의 예술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근간에 젊은 작가들 중에 확연히 많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 자체의 범주 설정이라는 문제에서 삶의 제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실험적 프로젝트 미술이 들에 붙은 불처럼 퍼져간다.


서구에서는 자본주의가 18 · 19세기에 시작되었고, 20세기를 통해서 완숙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외부세력과의 투쟁도 존재했지만 문명 내에서의 충돌이 있었다. 계층과 계층 사이에서 투쟁과 화해의 지난한 과정 속에서 문명화가 이루어졌다. 문명화가 이루어지면 일단 예술이나 문화 영역까지도 세련화된다. 비서구 사회의 경우 자본주의를 통한 문명 내의 충돌과 화해의 과정이 존재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신권이 있다 해도 본질적으로 전제적 군주 제도였고, 19세기 서구사회의 침략과 지배 통치를 받으면서 타의에 의한 문명화 과정을 수동적으로 겪은 사회였다. 비서구 사회 대부분이 그러한 운명을 경험했다. 문명화 과정의 수동적 수용이란 문명 내의 자발적 투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우리의 경우도 다른 나라들과 다르지 않게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외양상의 표피적 문명화 과정마저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국가 주도형의 개발독재는 문명화 과정이 생략된 근본적 이유이다. 문명화 과정이란 시민계층과 지배층 간의 투쟁과 화해를 연속적으로 거치면서 두 계층이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제도적 완충장치를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 완충장치가 없다. 시민계층이 사회적 · 경제적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장치가 없는 것이다. 소외 속에서 참아야만 했다. 수직적 수형 모델 속에서 권위적 명령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권위적 모델 속에서 여전히 굴종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지평의 길을 찾아 나설 것인가?


최형욱 작가는 수평적 사고 실험을 지속적으로 개진하면서 의미를 타진한다. 2013년도의 <창동여지도>부터 작가의 의식에 실험이라는 불확정적인 모험이 주는 강렬한 상이 맺힌 것 같다.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작가와 의견을 교환하는데 시민들이 경험했던 삶의 구체성이 지도 그리기에 반영된다. 들뢰즈는 사본화와 지도 그리기라는 개념을 나누어 지식의 본질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사본화는 전형적 지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고 지도 그리기는 한 개념적 인격(conceptual personae)이 직접 발로 뛰면서 얻어낸 살아 있는 지식인데, 작가의 <창동여지도>의 경우에도 삶이 적극적으로 투영된 지식의 문제를 지도로 형상화한 프로젝트이다.


2014년 리움 미술관 우혜수 학예실장이 기획한 <잇! 태원: 감각의 지도 프로젝트>에서도 작가는 이태원 지역 주민들의 삶과 이 주민들이 감각적으로 기억하는 경험의 상들을 지도로 구체화시키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지도는 측량적 개념을 도입하여 하나의 지면에 수치적 비율로 축소화시킨 개념적 모형이다. 여기에서는 사회학적 이야기가 배제된다. 그러나 지역의 문제를 생각할 때, 여기에는 토목 기술자 · 건설 기술자 · 원주민 · 외부 투자자 · 행정가 · 정치가의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 역학관계를 있는 그대로 다룰 수는 없을지라도 한 지역을 생각할 때 지역은 인간사의 기획과 감정, 자본과 언어가 착종되어 있는 풀기 어려운 실타래의 영구적 연쇄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최형욱 작가는 이 복잡다단한 실타래를 모두 형상화하지는 않았더라도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충분히 주었다.1


2015년의 <비빌언덕> 프로젝트는 젊은 작가들의 애환을 더욱 절실하게 상기시켜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나라는 문명화가 진행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일제로부터 투쟁한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차지했어야 마땅할 권력을 이승만 정권이 찬탈했다. 그 이후 거의 모든 권력은 찬탈에 준하는 불법적 성격이었다. 문명화 과정에서 피어나는 시민들의 고양된 의식과 권리들은 권위적이며 억압적으로 눌려온 것이 사실이다. 관 주도의 경제개발은 상층부의 물 덩어리를 비대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물 덩어리가 이른바 ‘트리클 다운’ 효과로 하층부로 내려온다는 수사학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한계에 부딪혔다. 우리 사회를 이만큼 이끈 것은 관과 기업의 위대성이 아니라 노동자의 위대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리클 다운’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직접 나누어야 한다. 나누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 투쟁과 화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에 대하여 우리 사회는 여전히 냉전적 이데올로기로 매도한다.


<비빌언덕>도 없는 젊은 작가들은 어째서 존재하는 것인가? 미술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젊은 작가들에게 자생의 가치만을 강조했고 정작 사회적 보호 장치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엉뚱한 곳에서 낭비되는 사회적 인프라와 예산을 조금만 아끼더라도 매우 좋지는 않더라도 젊은 작가들에게 썩 괜찮은 <비빌언덕>을 충분히 마련해줄 수 있다. 작가는 자기의 바램을 작품으로 외면화시키면서 사회 전체의 성공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에 ‘하나이면서 전체(hen kai pan)’라는 개념이 있었다. 이것은 18세기 독일의 계몽사상가 레싱(Gotthold Lessing)에게 전해졌다. ‘하나이면서 전체’라는 개념은 계몽된 나의 의식이 사회 전체로 파급되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밝혀진 의식이 나의 의식마저 밝혀준다는 뜻이다. 작가는 자기 주위에 일어나는 조그만 문제점을 내면에 의식화한 다음 시각이라는 매체 또 프로젝트라는 기획 의도라는 양 날개로 사회에 다시 상기시키는 현시점의 계몽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계몽은 영원히 끝나서는 안 되는 기획이어야 그 존재의 당위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계몽을 요구해야 한다.


최형욱 작가는 어느 기고문에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노동의 개념을 상기시킨 적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 사회를 구성할 때 노동의 조건으로 인간을 좋은 처지에 존재하게 할 수도 있고 나쁘게 존재하게 할 수도 있게 한다고 했다. 즉 인간은 ‘아니말 라보란스’와 ‘호모 파베르’로 나뉜다는 것이다. 전자는 세상과 차단된 채 고된 노동을 반복하는 인간이다. 후자는 공동체 속에서 대화와 담론을 거치면서 노동을 통해 공통의 창발적 사유를 개진시킨다. 전자에는 없지만 후자에는 있는 것이 바로 유희이며 사유이다. 사유는 고고한 지점을 형이상학적으로 다가가거나 어려운 수식과 방정식을 푸는 이성적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해 사유란 우리가 살고 있는 조건을 지금보다 더 좋게 만들려는 시도로 보아도 좋다. 그 시도는 매우 즐겁고 유쾌하다. 어렵고 무거운 것이 아니다. 최형욱 작가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현장을 뛴다. 연인 사이의 문제에 귀 기울인다든지, 고된 노동과 휴식의 문제에 주목한다든지, 예의가 없어져가서 고민인 학교를 생각한다든지, 미디어 중독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을 생각한다든지, 아주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에 생각하는 재미를 담아낸다. 최형욱의 사고 실험은 늘 건강하고 예민하되 우리로 하여금 늘 세계와 함께 살기를 권유하고 강조한다.




1 2013년 <창동여지도 프로젝트>와 2014년 <잇!태원: 감각의 지도> 프로젝트는 ‘인사이트씨잉(Insightseeing)’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이 함께 기획했다. 참여 작가로 최형욱 외에 조성배 · 나광호 · 이정훈 작가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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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폭격 후 웅덩이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_2016] “실험놀이터” 실행을 위한 사전 연구 1. 프로젝트 개요  ○제           목 :   (가칭) “실험놀이터” 실행을 위한 사전 연구 ○기           간 :   2017.10.01 – 12.22 ○장           소 :   경기도 oo군 일대 ○사업     내용 :   지역 기반 리서치 연구, 책자 발간, 시뮬레이션 모형 제작, 전시  ○주관 및 후원 :   oooo재단 oo문화사업단 ○기획 및 실행 :   최형욱(시각예술가, 예술교육가) 2. 기획의도 놀이를 잃어버린 사회 ‘논다’는 행위는 “개인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을 도모”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화적 활동입니다. 놀이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배우며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행위입니다. 사실 아이들만 노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창조적인 일을 하는 어른들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 후 사회가 복원되는 시기 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지만 지금의 어른들에게는 느슨한 공간과 시간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조직하고 만들고 탐험하는 행위를 통해서 아이들은 아무것도 기댈 것 없는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고 사회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한 어른들이 보기에 스스로 놀이를 조직하고 자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요즘 아이들은 놀 줄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관점을 약간 달리해 보면 모든 세대의 아이들은 언제나 놀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이들의 욕망을 제거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어른들입니다. 도시의 장소는 ...

2011 Manuel Wood Signboard Workshop_Bonghwa traditonal market

  봉화시장 간판 제작 워크숍 2011  기   간 :  2011. 4.-2011.9 참여자 : 봉화시장 상가 사장님들(한일떡방앗간, 송이식당, 아셀건강원. 로얄분식, 고향손두부, 내성기름방, 신솔반점,  구일식품) 기획 및 실행 : 최형욱   봉화시장은 상가 주인들의 상업공간이자 생활공간다. 고유한 정체성을 담고있는 삶의 전부라고 할수 있다. 어떤분들에게는 어린 시절 부터 자라온 고향이고 어려운 시절 기근을 넘기기 위한 투쟁의 공간이고 자수성가하여 자식들을 중산층으로 진입시킨 저력의 공간이기도 하다. 봉화시장은 역사적으로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한의 물자와 내륙의 물자를 연결시켜주는 상업적인 요충지였다. 그러나 도로망의 확충과 인근 도시들의 지리적 경제적 지형도가 바뀌면서 지금은 작은 시골장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 시장은 지역 커뮤니티에서 단순한 상거래 기능 이상으로 지역 정체성을 연결하는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다. 이런 역사성과 지역 정체성의 마당인 봉화시장에서 상인들과 함께 그들의 상가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공 간판을 함께 제작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12주 코스로 기초적인 목공 교육부터 간판제작, 상업공간에 필요한 소품가구까지 손수 제작하는 과정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상인 분들은 본인 가게에 대한 본인 고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를 확장하거나 실현하실수 있도록 작가는 돕는 역할을 하였다. 간판 디자인은 전적으로 상인들의 생각을 따라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