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각자도생의 시대에 예술가들에게 광장이란? (' oo 의 기억' 전 에세이 )


                   














| 최형욱 2017

경제학 용어에서 사일로 효과(Silos effect)라는 말이 있다. 원래 곡식저장용 창고를 의미하는 이 용어는 조직내 부서 이기주의로 인해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서로 배타적인 상태를 일컫는다. 우리식으로 번안하면 ‘밥그릇 싸움'쯤으로 이해 할 수 있을것 같다. 이러한 밥그릇 싸움은 조직원들의 이기심이 원인으로 작동한 것도 있겠지만 전체 조직의 메카니즘에 따라 개인의 응답방식이 좌우되는 것이 보다 정확한 사실이다. 상벌의 메카니즘 아래 경쟁을 통해 살아남도록 설계된 구조아래서 부서들은 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배타하게 되어있다. 


단기고용, 임시적인 파트타임 일자리, 유동적인 삶의 거처가 기본적인 삶의 양태로 자리잡은 동시대 사회속에서 어떤 조직과 공간에서도 애착을 형성하기 힘들다. 실제로 어떤 회사에서는 한 조직이 지나치게 세력화되고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9개월 단위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팀을 해체시킨다고 한다. 즉 관계가 피상적이고 묶이는 시간이 짧다는 사실이 함께 작용하여 사일로 효과를 강화한다.1) 
이러한 환경에서 다른 사람의 일에 개입하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견해가 팽배 해진다. 


이는 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술계도 다른 시스템 못지않게 소수 엘리트 독점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제한된 기회들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은 불가피하다. 기본적으로 ‘상’으로 차별성을 부여하는 시스템인데 이는 어린시절 학교에서부터 사회전체를 관통하는 효율성의 시스템이다. ‘상 ‘ 이 라는 것은 결국 어떤 상층부로 진입하기 위한  ‘문지기’ 혹은 ‘필터'기능을 통해  입장할 수 있는 자와 입장할수 없는 자를 걸러내기 위한 배제의 메카니즘이다. 동시대 청년 작가들은 그 차별성을 획득하기 위해 다양한 경력과 독특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로 무장한다. 이를 위해 값 비싼 기회비용들을 지불 하지만 여전히 유동적이고 불안한 기반 위에 서 있다. 소위 말해 고학력에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단기고용과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창작생활을 이어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계의 동료들끼리도 사일로 효과는 더욱 강화된다. 


탈기술 사회에 개인들은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존재들이 되었다. 괜찮은 예술기관의 단기 인턴 자리에도 유학파 고학력자들이 줄을 지어 서있기 때문에 사람은 언제나 대체 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어떤 조직과 관계들에 정성 들이기를 회피하는 것은 비단 개인들의 윤리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차별성을 증명해야 물 속에 가라앉지 앉고 숨쉴 수 있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존재적으로 생존을 위해 주변을 착취하거나 혹은 착취할 대상이 없으면 스스로를 가혹하게 착취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예술은 차별성을 획득해야하는 독특한 창조적 전유물일까? 예술이 소수 개인의 독특한 창조적 표현이라는 개념은 인류 문명사 전체를 하루로 가정할때 하루가 끝나가는 마지막 0.001초에 생겨난 개념이다. 예술이 차별성을 추구한 역사보다 보편적인 가치들을 생산해온 역사가 더 길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오랫동안 예술가들은 자신은 독특한 존재로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자의식을 가지기 보다는 무언가를 대리하는 매개체의 역할로 자신을 인식하였다.  


이플럭스 사이트 운영자이자 작가인 비도클은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일종의 자주권을 열망한다. 이는 미술을 생산하는 것 외에도 생산과 유통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2) 라고 말했다. 즉 예술을 생산하는 조건들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때론 그 과정 자체가 작품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윤리수준을 넘어서서 예술을 생산하는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배타성의 매카니즘아래 자신을 브랜드화 하고 차별성을 증명해야하는 시대 속에서, 보다 예술이 사회적 연결의 즐거운 생성 과정이 되는 경험을 과연 얼마나 해 보았나 스스로 질문 해본다. 


2017년 1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에 어중간한 지점에서 우연히 만난 작가들이 함께 전시를 하게 되었다. 무얼할지 몰라서 일단 어색하게 밥을 먹고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전시의 문법을 놓고 이렇구 저렇구 이야기를 하였다. 일단 포스터 이미지 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미니어쳐를 제작하기로 하였다.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종의 놀이 형식의 워크숍이 되었다. 생각치도 않았던 배치와 조합, 그리고 서로다른 작가의 공간과 연장들이 배열, 재조합되면서 재미있는 화학작용이 일어났다. 그리고 미친듯이 웃어댓다. 마치 처음 예술이라는 놀이를 해본 것처럼.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미치광이 워크샵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그 전체 과정을 하나의 전시 문법으로 받아 들이게 되었다. 


게임을 하며 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의에 도달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그 규칙은 서로 간섭을 허용하고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속에서 혼자의 세계를 구축할 때는 전혀 생각해 볼 수 없었던 화학적 반응들이 일어나게된다.


어떤 고정된 목표를 향해 팀으로 작업하다보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효율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의견이나 아이디어는 주변 부로 밀어 낸다. 그런데 느슨한 목적아래 과정 전체를 열어 놓으니 어떠한 것도 작업이 될 수 있었다. 개인의 경험차, 인식의 차이, 메일에 다는 언어적 습관, 서로가 보유하고 있는 미디어 기기의 차이, 모니터의 해상도차이, 심지어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발언조차도 ‘미치광이 워크숍’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창작의 과정이 무겁고 힘겹고 자신을 착취하는 과정이 아니라 즐거운 연대와 생성의 과정이 될 수 도 있겟다는 어렴풋한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서로에게 간섭을 허락하고 약간씩 착취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기로 합의를 하고 나니  무게중심을 에고(ego)로 부터 상호 간섭의 과정 속으로 흩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서로에게 열려진 틈 사이에서 일종의 느슨한 이 공동체를 나 자신의 확장으로, 나의 ‘사회적 몸’으로 상상하기 시작하였다. 

스스로 생존을 위해 고민하던 것을 넘어서 작업을 상호간섭의 과정속에서 놀아보기로 한 이러한 시도들이 앞으로 어떤 반응으로 생성되어갈지 기대된다. 이는 마치 생물 같아서 어떻게 자라날지 알수 없고 결론이 열려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1) 리차드 세넷, 김병화 역, 투게더, 현암사, p30 
2)할포스터 외, 신정훈 외 역,1900년이후의 미술사, 세미콜론, 2007, p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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