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2025 Dancing Flow of Microorganisms

2021 Appangard: A conversation between two artists and four fathers _ Introduction (1)


서문 : 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최형욱 (시각예술가, 빈둥디렉터)


이번 프로젝트는 주로 영유아부터 학령기 자녀를 둔 아버지들의 동시대성을 연구하기 위한 일종의 대화 프로젝트이다. 우리가 대화를 주 방법론으로 삼은 데는 무엇보다 팬데믹 상황에 기인한 바가 컸다.

 

기존의 기획이나 프로그램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현재 시점에서, 나를 포함해서 소위 문화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사업의 가시적인 성과에만 급급해 왔다는 자기비판이 출발점이 되었다.

 

언택트 상황은 우리가 멈추어서 질문하기를 허용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예술가들은 멈춰 서서 질문하고 대화함으로써 우리가 교감하고자 했던 대상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자 하였다.

 

아버지만큼 실체도 없고 여러 가지 과거의 이미지와 의미와 그리움과 원망이 끈적하게 얽혀 있는 단어는 또 없을 것이다. 이 실체 없는 단어의 현상과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동시대를 나름의 고민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별 아버지들과 만남을 시도하였다.

 

우리가 하고 있는 시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사업 주관기관도, 기획자도, 참여하신 아버지들도 정확히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알코올에 의존하지 않고, 서로를 기대하며, 밤마다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형의 울림이 있었다.

 

먼저, 동시대 아버지들의 개별성에 집중하기 위해서 일정한 이해의 틀이 필요하였다.

 

우리가 만났던 아버지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화된 자리매김을 시도하는 아버지들이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들이 삶의 태도와 실천들이 쉽지 않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아버지가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환영하는 듯한 신호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실재 육아와 살림에 적극적인 삶을 사는 아버지의 존재를 거북스럽고, 외롭고, 무언가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집에 있는 아버지를 누가 좋아해? 창피하지도 않아?’라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의 무의식적 기저에는 이러한 반응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

 

우리 사회에 어떤 뿌리 깊은 관성이 자리 잡고 있길래, 개별 아버지들의 육아에 대한 능동적 선택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동시대 아버지들을 형성한 기존의 아버지다움에 대한 해석이 먼저 필요했던 이유이다. 공교롭게도 대화를 나눈 우리 모두는 당신의 아버지 존재에 대한 기억이 부재하거나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근대의 아버지-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현재 노인 남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시각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에 대한 관념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된다. 노인이 된 남성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지금 은퇴를 앞둔 60대 베이비부머 세대부터 80대까지 전반적으로 전쟁 전후에 태어나 우리 사회의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분들의 이야기이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머리에 떠오른 그림이 하나 있다.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그림이다. 혁명의 사명을 완수하느라 갖은 고생과 감옥살이를 하고 오랜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맞이하는 한 가족의 당혹감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특히 퀭한 아버지의 눈동자와 딸아이의 공포스러운 눈빛이 인상적이다. 가족은 아버지가 집에 없는 일상이 매우 평온했고 아무도 그가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듯하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1888, 일리야레핀, oil on canvas, 160x167cm,
트레차코프미술관, 모스크바



지금도 건설일용직 현장에 가보면 외국인이나 70대 어르신들이 주로 나오신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어떤 전설적인 이력을 보유하고 계셨다. 지하철 1호선 공사 때, 어느 대학병원을 건설할 때, 강남의 빌딩을 지을 때 그 현장을 손수 매만졌던 과거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그 일용직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한창때 사업체를 크게 운영하였다. 평균적으로 직원을 열 명쯤 거느린 중소기업 사장님 이셨다. 그리고 금융실명제 당시 명의를 빌려준 통장이 부도나서 혹은 IMF 때 밀린 어음을 받지 못해서 사업이 기울었고, 그 이후로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현장 일을 하려는 젊은이가 없어서 자신들이 죽으면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푸념을 쏟아내신다. 그들은 단지 돈 때문에 현장에 나오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연로한 몸을 이끌고 현장에 나오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전성기 시절의 활동을 지금도 이어감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회복하기 위해서 인 것 같았다.

 

이러한 개인사의 바탕에는 국가의 존재감이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아버지의 남성성은 국가적 맥락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통과하면서 남성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며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 스스로 군사력과 전투력을 향상하는 일은 남성적 민족성의 핵심을 이루었다. 산업화 시대, 국가 부의 원천은 농토가 아니라 남성의 노동력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군대, 월남 파병, 중동 파견, 중공업, 제철, 제강, 자동차산업 등 군사화된 남자의 강인한 신체는 국가 부의 원천이었다. 노동력과 군사력을 제공하는 정상 시민은 곧, 남성을 의미했다.

이러한 문화 아래서 우리의 노동자 아버지들은 자신의 삶을 국가와 사회에 일치시켰다. 국가를 지키고, 산업화의 기적에 일조하면 오늘보다 내일은 나아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충족시켜야 할 기본값 자체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뭐든 열심히 하면 어제보단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므로 군부, 마초, 엘리트 남성들이 주도했던 조국 근대화는 자기 효능감이 매우 높았다. ‘하면 된다는 정신은 그 시절 모두의 구호였다.


그런데 IMF 구제 금융사태와 더불어 변화가 시작되었다. 헤게모니는 노동이 아니라 금융 자본으로 넘어왔다. 금융 자본 흐름에 따라 노동력은 때때로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노동이 점점 쓸모없어짐에 따라 남성들의 호주머니는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1) 또 다른 한편에서 소비 자본주의의 확산은 기존의 남성다움의 가치를 점점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근검하라’ ’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의 시대에서 즐겨라! 관광하라! 소비하라!’가 중요한 시대적 명령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새롭게 요구되는 시대적 명령 앞에 남성들은 상대적 경쟁력을 잃어갔다. 결정적으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신자유주의에 따라 인간들의 삶이 불투명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고 기획할 수 없게 되었다. 2)

집으로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가지고 돌아온 아버지 존재에 대한 질문이 꼬리를 물다 보니 결국 근본적으로 노동-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연결이 되었다. 존재들은 무엇을 통해 사회 안에서 의미를 찾고 자리매김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당당했던 과거의 아버지들은 어느 순간 퇴직할 때가 되었고, 혹은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반강제로 갈 곳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특히 큰 기업이나 공직사회에서 훌륭하게 자리매김했던 아버지일수록 은퇴 후 매일 출근하던 자리가 사라졌을 때 그 충격의 강도는 정비례하였다. 그는 다만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을 뿐인데 은퇴 이후 존재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것이다. 저주받은 삼식이로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매일매일 밖에 갈 곳이 있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어버렸을 때 제일 먼저 밥 먹는 것부터 문제가 된다. 대체적으로 오랜 시간 집안의 공간을 주체적으로 운용했던 안주인과 동선이 겹치면서 갈등이 점점 첨예해진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회에서 자신을 찾는 이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은퇴 후 갈 수 있는 일자리는 기존 연봉에 반의반도 되지 않는 자리뿐이다. 단순히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 자체가 상처를 입는 것이다. 이것도 그나마 좋은 경우이다. 자식의 사업 자금으로, 자녀의 유학 및 결혼 자금으로 자산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 노부모는 노인 빈곤이라는 길고 긴 어둠의 터널에 진입하게 된다.

 

생산이라는 관점에서 사람의 일과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다 보니 그 외에 사회를 지탱하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가치는 폄훼되었고 그저 사회가 기대하는 생산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회 구성원에 대해서는 미달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비숙련직도, 아이, 구직자, 청년도, 주부, 노인도 모두 미완의 존재라는 보이지 않는 꼬리표가 붙는다.

 

어린 왕자 이야기에서 네 번째 별에서 사업가를 만나는 부분이 나온다. 그는 하루 종일 별을 소유하기 위해 별의 숫자를 세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중요한 일들을 하느라 공상할 시간이 없다. 어린 왕자는 그에게 진짜 소유란무엇인가 반문한다.

 

나는 꽃 한 송이를 갖고 있어요. 난 그 꽃에게 매일 물을 줘요. 화산도 세 개나 갖고 있는데 매주 청소를 해줘요. 내가 꽃이나 화산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유익한 일이죠. 그렇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유익할 게 없잖아요.”

 

어린 왕자의 관점에서 산업적인 명분 아래 정량적 결과물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것보다 무언가 유지하고 돌보는 일이야말로 이 세계에 이로운 일인 것이다.

남성성과 연결된 가장-생산-노동이라는 뿌리 깊은 신화 체계를 재구성하는 유연한 시도가 없다면 앞으로 우리 아버지들의 존재는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존재의 자리

 

자리는 존재 자체가 여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신뢰의 뿌리를 내리게 한다. 자신의 자리 하나가 있고 없고 가 존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고 세상에 단단하게 서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연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듯이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면 이를 구축할만한 가시-비가시적 공간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책상 자리 하나가 사라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경험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사실은 있다. 천한 직업과 아닌 직업의 차이는 급여 수준에도 있지만 반듯한 책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도 크다.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화장실과 탕비실이 있느냐 없느냐는 존재의 존엄성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건설노동자는 공사 현장에서 소변과 오줌을 눌 곳이 없을 때 공사 현장 아무 데나 가서 일 처리를 하게 된다. 그는 현장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더럽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때 그 누구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애초에 공사 현장에 화장실을 만들어 주는 것이 건축주나 현장감독의 책임이었음 에도 불구하고, 공사 감독이나 건축주는 현장 노동자를 바라보며 경멸의 시선을 재생산한다.

 

근로 노동자에게 반듯한 책상이 생겼다 해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턴직원의 책상은, 가장 책임이 작고 위험부담이 낮은 업무를 함에도 불구하고, 출입구 가까이 회사 모든 구성원에게 열린 방향으로 놓이게 된다. 반면 부장님은 누구도 볼 수 없는 제일 안쪽에 창을 등지고 놓이게 된다. 불안한 존재들의 자리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긴장이 조직사회에는 늘 있기 마련이다.

왜 기성세대 아버지들은 국가가 요구하는 노동자-정상 시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인데 궁극에는 갈 곳이라는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첫째 이유는 아마도 집안에서 범죄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마초-남성성-국가로 이어지는 공통점에는 합법적 폭력 행사의 그늘이 있다. 국가는 가정 내 문제는 경제적 주권이나 의사결정권을 가진 가장에게 위임함으로써 일종의 암묵적인 폭력 권한을 인정하였다. 가정 사범들의 낮은 형량이 이를 반등한다. 물론 자상하고 유머감각 넘치는 옛 어르신들도 분명 많이 계신다. 하지만 몇몇 폭군 아버지들은 그 위임받은 권력을 남용하였다

 

두 번째 이유는 정서적 에너지 분배에 실패한 혐의가 있다. 인정 욕구를 따라가는 동물인 인간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공동체서 좀 더 많은 에너지와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마련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어느 한쪽으로 점점 짙어지기 쉽다. 대부분의 사회생활에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 남성은 집과 집안은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일종의 자신의 무의식을 내려놓는 이드 id’의 공간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반면 사회와 회사는 의지적인 노력을 기울여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슈퍼에고 super ego’의 공간이다. 이런 까닭에 노동자 남성은 도덕적인 슈퍼에고를 선보이는 공간에서 더 착실하고 좋은 사람으로 비칠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노동과 부가가치 창출, 임금노동자, 일정 기능을 갖춘 인재를 정상 인간'이라는 범주로 묶어두고 그 주변부의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존재를 미달의 상태, 아직 미완의 상태로 간주하였다. 공공 행정 서비스를 받거나 은행 업무를 보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이 정상 국민임을 증명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아르바이트는 젊은 시절 잠시 거치는 고생으로 치부한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따라가기 싫어하는 일본은 우리보다 십여 년 앞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였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두고 젊은이와 노인이 서로 경쟁하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도 머지않았다. 아니 이미 도래했다.


아버지의 존재적 지위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자리 매김이 모호한 이유는  우리가 보고 자랐던 과거의 아버지에 대한 관념의 그늘이 현대의 남성-가장-아버지에게도 연속적으로 길게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에 있는 남성을 정상 시민에서 탈락한 존재로 바라보고, 혹은 잠재적 범죄자, 아직, 미달, 보류 상태로 보는 시각들이 과거로부터 재생산되는 것이다.


설사 아버지들이 변화하는 젠더 역할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여 유연한 역할을  수행한다 해도 극복해야 할 사회적 불편한 시선은 여전히 남아있다. 주거공간에서 아버지는 신분증명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예를 들어 한 아버지가 아파트에서 아기를 업고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기 위해 대낮에 현관을 나선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짧은 동선 안에서 여러 시선을 거치게 된다. 자신의 존재에 정당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경비 할아버지께서                        

요즘 출근 안 하시나 봐요?”

동네 할머니가                            

대체  애기 엄마는 어디 갔어?”

어린이집 차를 함께 기다리는 이웃 엄마가  

“... “

 어떤 존재가 길을 가는데 무언가 해명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면  우리는 이를  난민이라고 부를 수 있다.

 

 



------------------------------------------------------------------
1) 엄기호 외,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 모음, 2011, p154  

2) 엄기호,『Ibid』, p184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CV

최형욱 Heonguk Choi_ KINGWORK STUDIO   While working as a visual artist, I have planned and operated public art and art education projects. I've been working on the installation with an interest in the concept of place and shelter. In particular, with a sense of how to welcome children as refugees in the public, we are working with fellow artists to create an artist cooperative team called Bindoong Play and work on an experimental playground that children can make themselves in a Korean context. I am  2024-26 Resident Artist, Rijksakademie van beeldende kunsten in the Amsterdam.  I worked as an artist in the 2019 Kim Jong-young Museum of Art's Young Creative Artist individual exhibition, the 2016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oyang Residency artist, and the 2014 Sturndas Museum residency in Finland.  #KingworkStudio #Artist Choi Heong uk#VisualArtist #ArtEducationActivist #CommunityDesign #PublicArtProject #Carpenter#PlaygroundDesign#Seoul ArtsEducat...

2018 Design for the outskirts, the Farm ware house

쌀의 독백: 일시적 식구 Monologue of Rice: Temporary Mouths to feed 2018 .  5 .  18 – 5 .  27 경기상상캠퍼스 "여기서 텃밭농사 지은 지 10년 되었어. 물이 안 나와서 힘들어ᅠ 수도는 니기랄 돈이 한 달에 백만 원씩 나오는데 어떻게 ?  농사 뭐 하러 지어? 차라리 사먹는게 낫지. ᅠ 물이 잘 나오면 돈이 들어도 지하수 파겠는데 팠다가 안 나오면 말짱 황이잖아.  옛날에는 지하수 물이 잘나왔어.  재활용센터 짓고 나서는 잘 안 나와. 저게 지하 8층이야.  지하에 물줄기가 다 끊긴 것 같아.  방수하고 머하고 하는 바람에 물줄기가 잘려 버렸어.”  (중랑구 거주 40년, 최 씨 어르신, 70대) 농지법 시행령상의 '농막'의 정의는 “농작업에 직접 필요한 농자재 및 농기계 보관, 수확농산물 간이처리 또는 농작업 중 일시휴식을 위하여 설치하는 시설”(전체면적 20㎡ 이하이고, 주거목적이 아닌 경우로 한정한다.)이다. 하지만 도시 변두리 지역의 실재 농막의 숨은 정의는 좀 더 복잡하다. 유명인사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자숙의 기간 숨는 공간이기도 하며, 주말 농사를 짓는 도시민들에게는 주말에 친구들과 모여 잔치를 열 수 있는 아지트가 되기도 한다. 또한 불법이긴 하지만 상당수의 농막은 실제 오갈 곳 없는 많은 사람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 실제로 서울 변두리의 그린벨트 지역에서 농막을 지어 놓고 도시와 경계의 삶을 오가는 70대 어르신을 우연히 만났다. 평일에는 냉동차 운송 일을 하시고 일이 없는 날이면 농막에 나와 밭을 돌보신다. 땅 주인에게 일 년에 쌀 한 가마니 정도 세를 내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든 나가라면 나갈 수...

2015 Communutie Art Story, From Physical Place to The People

2015 삼성미술관 리움아트클라스 강의안 물리적 장소에서 사람으로 향하는 미술 : 미술에서 장소성 개념의 변화  최형욱  프롤로그 어디에 있는가 ? 어디에 사느냐 ? 라는 것은 많은 문맥과 함축적 의미를 포함한다 . 모든 상황은 문맥이 중요하다 . 장소를 묻는 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를 알아보는 것 이상의 문맥과 상황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는 것이다 . 장소성과 미술이라는 주제는 ‘ 미술이 어디에 놓이느냐 ?’ 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 어디에 놓이는가 라는 질문은 곧 ‘ 누구를 위해 제작되느냐 ?’ 로 이어지고 주문자나 수용자에 대한 문제를 전제로 한다 . 예술이 ‘ 누구를 목적 삼느냐 ’ 라는 이 질문은 예술의 근본적인 전제 , 즉 ' 누가 누구를 위해 제작하고 왜 제작하는가 ’ 라는 것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이 복잡한 논쟁을 제기한다 . 영어로 'Take place' 라는 문구는 ' 사건이 일어나다 ' 를 의미한다 . 장소는 사건이나 스토리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이다 . 1. 미술과 장소가 하나였던 시대 라스코 동굴벽화 원시미술 , 종교건축 , 궁정미술 등에서 장소와 미술은 분리될 수 없다 . 종합적인 경험으로써 장소를 만들었다 . 원시미술부터 프레스코화 , 중세 , 르네상스 , 바로크 시대의 성당 , 궁정 건축물들을 아우른다 . 특히 서양의 성당이나 궁정 건축물에서 조각 작품은 건축과 분리 될 수 없었다 . 조각작품은 건축의 요소였고 일부였다 . 르네상스 이전에는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예술이 거의 없었다 . 오늘날 우리가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수공예로 손수 생필품을 만드는 것 이었고 , 종교예술은 제의를 위한 도구였다 . 장인들의 길드 조직도 생필품 길드부터 금속공예가 길드에 이르기까지 위계나 구분이 없었다 . 모두 같은 장인들의 조합이었다 . 그리고 미술 작품은 건축 안에 종속되어 있었다 . 건축이나 장소를 떠나 따로 이동과 판매 가능한 미술 작품이 거의 없었다 . 2. 미술 ...

2012 A Gulag for my kids, 2nd Solo Exhibition

내아이를 위한 굴라크 최형욱 개인전 내아이를 위한 스마트폰 사용 훈련기  A smart phone training system for my kids,  Wood Steel Timer, 96.5x82.6x60.5cm, 2012 서울문화재단 문화숲 프로젝트  가든파이브 아티북 갤러리 2012. 11.02 - 2012. 12. 30 최형욱 작가는 아주 사소한 생활용품,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집기와 물건들과  길거리에서 마주 칠 법한 장면들 속에서 관습, 도덕, 상식, 진지함 등 사회적인 상위가치와 경박함, 가벼움, 쓸모 없음, 사소함 등의 하위가치가 충돌하는 모습을 포착하여 이를 페인팅으로 옮기거나 설치와 조각장치로 표현한다. 그는 이러한 이중적인 속성 속에서 동시대의 리얼리티를 발견하고자 한다.  인격적 셀프체벌기계 A moral machine for self punishment,  Wood Electroic motor ,30x26x75cm 2012  인격적 셀프체벌기계 사용설명서  Guide of a moral machine for self punshment 예의바른 교무실 출입장지  A doorway device for making courteous children,   Wood Steel, 101.2x73.5x28cm, 2012 이번 “내 아이를 위한 굴라크”전은  아이 와 그 대립각에 있는 양육자, 훈육자, 교육자 관계에  빗대어 사회적  상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특유의 조형언어로 표현 한 전시 이다.  굴라크Gulag 는 구 소련의  교정 노동 수용소 관리국의 약칭이며 강제 노동 수용소를 의미한다.돌보는 자와 돌봄을 당하는 자로 부터 시작한 사회의 기초단위는  학생과 ...

2014 It!Taewon : The Geography of sense Project

It!Taewon : The Geography of sense_Silks creen on steel_200x200cm_2014 잇태원 : 감각의 지도 프로젝트  기획   인사이트씨잉 (조성배, 나광호, 이정훈, 최형욱)  디자인  살몬  번역  엄규희  교정  방유경 영상편집  한연수 후원   삼성문화재단 / 삼성미술관 기간   2014. 1.1 - 2014. 8.18 참여주민 구승회, 국종훈, 곽호빈, 김순옥, 김연경, 김영자, 김오동, 김종윤, 김철용, 나정은, 동운용, 박혜라, 송옥순, 윤순호, 은조미용실 사장님, 이광호, 이남순, 이민아헤어테크 사장님, 이세진, 이원석, 이한준, 이항종, 이회석, 우금화, 원흥재, 정수진, 진식, 홍만기, 남부경로당 정씨 어르신, 동원부동산 할머니, 미영사 세탁소 사장님, 보광로 55-7 어르신, 북부경로당 할머니 회장님, 수도부동산 사장님 어머니, 오성문구 사장님, 어머님 공원 할머니들, 영스타헤어센스 파마하러 오신 할머니, 일심 경로당 어르신들, 일심 경로당 할머니 회장님, 전진열쇠 사장님, 진미식당 주방 어머니, 챔프커피 사장님, 태창철물건재 사장님, 하얏트호텔 노동조합사무실 위원장님과 사무장님, 한남 철물점 사장님, David Campbelle, Kang Melanie, Tahar Leeum 10th Anniversary Exhibition Beyond and Between, Photographed by Hyunsoo Kim 사람이 장소에 먼저 살고 그 다음에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지도가 만들어 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적인 속성과 여러 다양한 집단의 욕망들이 지도를 통해 투영되면서 실제 거주자의 장소에 대한 생각과 상관없는 기획들이 지도 위에 표시된다. 내 삶과 상관없이 내가 사는 장소는 익명으로 표시되거나 행정적인 명칭으로 획일화 되어 표시 되곤 한다. 그리고 지도...

2018 Conviviality Seongsu

  2018 인사이트씨잉 프로젝트 Conviviality Seongsu 2018 서울상상력발전소 빠른 발, 따라가는 시선  2018. 9. 13. THU _ 9. 21. FRI 성수동 에스팩토리 A동 참여작가: 인사이트씨잉(조성배, 이정훈, 최형욱), 김상진, 이예승,  조성현, 지누박, 진달래&박우혁, 허나영, 세운_여인혁, 세운_프래그랩 주관 및 후원 : 서울문화재단 이번 프로젝트는 성수동의  제작문화를 리서치  했던 2015년 <페키트  : 성수동 프로젝트>의  연장 선상에서  기획되었다 . 그 당시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 초기 단계였던 성수동 지역에서 구두제작산업의  종사하시는 분들을 만나 고 인터뷰 하면서 그분들의  보이지 않는 그물망을 따라가고 그분들의  언어와 일과 도구와 네트워크들을 설치미술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작업이었다.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방문해 본  성수동 지역은  새로 유입되는 구성원들과 기존의 쇠락해가는 산업 구성원들 간의 간극이  더욱  심화된  양상이었다. 서울시와  여러 기관의  수제화 거리 띄우기 작업에도 불구하고 구두산업 종사자 분들  누구도  이 산업의 미래를 낙관하는 분이 없었다.  심화된   젠트리피케이션은  임대료 상승을 빠른 속도로 부추기고 있었고 “구두 부자재 거리”에서 “뚝섬공원”으로 이어지는 벨트를 중심으로 건물주들은 기존의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만을  기다렸다가 구두, 가죽, 기계 관련 산업이 아닌, 더 높은  월세를  지불하고자   하는   입주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두 산업은 중국산 제품에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명품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격되기에는 인식의 부족, 디자인의 부족 등...

2017 Group InsightSeeing Lecture: Map of the Senses_Maps and Placeness

○ 일시 : 2017년 10월 31일  ○ 장소: 서울시 성북구 국민대학교 예술관 116호 Q1. 인사이트씨잉 어떻게 시작되었나 ? 인사이트씨잉은 2012 년에   경기도지역에 모 작가 작업실에 친한 선후배 작가들이 모였다가 우발적으로 시작된 모임이었습니다 . 여러가지 아이디어 회의 겸 수다 떠는 모임으로 출발하였습니다 .  돌이켜보면 졸업 후 힘든 창작자로써의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목적이 컸던 것 같습니다 .   그 한해 동안 여러 프로젝트 기획안들을 작성하였고 개중에는 운좋게 1 차 심사를 통과하였지만 여러 번 2 차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꽤많은 미완의 프로젝트 기획서들이 축적되었습니다 .   그러다가   2012 년 가을  , 나광호 작가가 입주해 있던 경기창작센터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있어서 거기에 협력 팀으로 참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Q2. 작업의 주제 WHAT? 저희 팀은 ' 장소 ' 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프로젝트들을 수행해 왔습니다 . 특히 장소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지도라는 개념 자체에 관심이 많이 있었습니다 .   예를 들면 연인이 통화할때 주로 첫 마디는 " 어디있어 ?" 입니다 . 상당이 복잡한 뉘앙스를 풍기는 질문이지요 . 이때   ' 어디에 있다 ' 라고 대답할때 특별히 신중해야 합니다 . 이렇게 어디에 있다라는 질문은 어떤 맥락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이야기들을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 장소는 단순히 독립적인 하나의 부분이 아...

# What is the Adventure playground : in the context of Bindoong play

유엔 아동권리협약  31조 | 여가와 놀이 | 우리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습니다.  모험놀이터는 기존의 고정된 놀이터와 달리 일견 무질서해 보이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상상력과 한계를 실험해보며 진짜 놀이를 만들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기존의 도시 공원녹지과에서 관리되는 놀이터들은 제도 아래 일정한 행위들을 제한하고 있지만, 모험놀이터는 플레이워커의 보호와 지원 아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놀이가 가능한 곳입니다. ○ 모험놀이터(Adventure playground)의 간략한 역사  2차 세계대전 중에 유럽의 폭격지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은 덴마크 건축가 쇠렌센(Carl Theodor Sørensen)은 코펜하겐의 교외에 폐자재를 방치해 놓은 엔드럽(Emdrup) 폐자재 놀이터를 개설하였습니다. 조경가이자 첫 번째 ‘플레이리더(play leader)’라고 할 수 있는 존 베텔센(John Bertelsen)은 단순히 안전 관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경험과 기술을 지원해 더욱 폭넓고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제안들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알렌(Allen)여사는 이 놀이터를 방문한 뒤 크게 감명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 영국의 도심 곳곳의 폐허에 모험놀이터를 설립하자는 운동을 하였습니다. 1950-70년대 사이에 점차 스웨덴,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국가 곳곳으로 모험놀이터 만들기가 확산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오무라겐이치, 아키코 부부가 1973년 알렌 부인의 책을 번역하면서 지역 부모들과 단기 놀이 프로젝트들을 진행하였습니다. 1979년 세타가야 구 ‘국제아동의 해’ 기념사업으로 민관 협동사업으로 일본 최초의 모험놀이터 ‘하네기...

2017 Preliminary research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experimental playground'

[시리아 내전 폭격 후 웅덩이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_2016] “실험놀이터” 실행을 위한 사전 연구 1. 프로젝트 개요  ○제           목 :   (가칭) “실험놀이터” 실행을 위한 사전 연구 ○기           간 :   2017.10.01 – 12.22 ○장           소 :   경기도 oo군 일대 ○사업     내용 :   지역 기반 리서치 연구, 책자 발간, 시뮬레이션 모형 제작, 전시  ○주관 및 후원 :   oooo재단 oo문화사업단 ○기획 및 실행 :   최형욱(시각예술가, 예술교육가) 2. 기획의도 놀이를 잃어버린 사회 ‘논다’는 행위는 “개인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을 도모”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화적 활동입니다. 놀이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배우며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행위입니다. 사실 아이들만 노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창조적인 일을 하는 어른들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 후 사회가 복원되는 시기 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지만 지금의 어른들에게는 느슨한 공간과 시간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조직하고 만들고 탐험하는 행위를 통해서 아이들은 아무것도 기댈 것 없는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고 사회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한 어른들이 보기에 스스로 놀이를 조직하고 자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요즘 아이들은 놀 줄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관점을 약간 달리해 보면 모든 세대의 아이들은 언제나 놀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이들의 욕망을 제거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어른들입니다. 도시의 장소는 ...

2011 Manuel Wood Signboard Workshop_Bonghwa traditonal market

  봉화시장 간판 제작 워크숍 2011  기   간 :  2011. 4.-2011.9 참여자 : 봉화시장 상가 사장님들(한일떡방앗간, 송이식당, 아셀건강원. 로얄분식, 고향손두부, 내성기름방, 신솔반점,  구일식품) 기획 및 실행 : 최형욱   봉화시장은 상가 주인들의 상업공간이자 생활공간다. 고유한 정체성을 담고있는 삶의 전부라고 할수 있다. 어떤분들에게는 어린 시절 부터 자라온 고향이고 어려운 시절 기근을 넘기기 위한 투쟁의 공간이고 자수성가하여 자식들을 중산층으로 진입시킨 저력의 공간이기도 하다. 봉화시장은 역사적으로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한의 물자와 내륙의 물자를 연결시켜주는 상업적인 요충지였다. 그러나 도로망의 확충과 인근 도시들의 지리적 경제적 지형도가 바뀌면서 지금은 작은 시골장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 시장은 지역 커뮤니티에서 단순한 상거래 기능 이상으로 지역 정체성을 연결하는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다. 이런 역사성과 지역 정체성의 마당인 봉화시장에서 상인들과 함께 그들의 상가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공 간판을 함께 제작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12주 코스로 기초적인 목공 교육부터 간판제작, 상업공간에 필요한 소품가구까지 손수 제작하는 과정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상인 분들은 본인 가게에 대한 본인 고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를 확장하거나 실현하실수 있도록 작가는 돕는 역할을 하였다. 간판 디자인은 전적으로 상인들의 생각을 따라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