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아버집 : 언택트 프로젝트

 2020 아버집 : 언택트 프로젝트 


. 프로젝트 소개


1.︎ 개요


○ 제  목 : 아버집 언컨택트 프로젝트

○ 내  용 : 부모플러스 아버지 예술학교 프로그램의 비대면 프로그램 연구 개발 및 실행 

○ 연구자 : 윤푸름(안무 예술교육)  민수광(설치미술, 문화기획) 최형욱(설치미술, 예술교육)

○ 연구 및 운영 기간 : 9월-11월 

○ 주관후원: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서울문화재단



2.︎ 연구 취지


기존 아버집ᅠ프로젝트는 과정 중심의 상호 체험적인 시민참여 예술 프로그램이었음

비 대면으로 현장 상호체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시민예술교육의 본질적 방향에 대한 고민 

참여자의 시점에서  아버지의 역할과 아이와의 예술 놀이 실천의 방향성을 살펴보고자 함

거리를 두면서도 함께 연대하며 집안에서 아이와 관계를 위해 실천적 고민을 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존재로서 아버지와 집의 역할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민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함



3. 연구 방향


 일방향적인 온라인 콘텐츠가 아닌 온-오프라인을 교차하며 감각을 확장할 수 있는 워크숍 
○ 집과 주변이라는 일상적 공간을 주재료로 하여 신체와 공간에 대한 감각과 인식을 확장하는 워크숍
○ 비대면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대하는 자발적 네트워크 형성을 돕는 방향성
서로 만나지 않는 상황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의 염원을 담은 상징물을 구체적인 장소에 구현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가능성 
○ 익명의 연대를 추구하는 기존의 온라인 플랫폼과 컨소시엄 개발 논의
○ 공동육아 모임 등 기존의 부모 네트워크들의 비대면 상황에 대한 필요들을 듣고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는 면담연구
○ 일회적인 예술교육 프로젝트가 아닌 자발적인 아버지 육아 모임들이 지속해서 연결될 수 있는   온라인 장소(플랫폼)의 기초를 마련



4.︎ 연구 방식


전체 화상 인터뷰 토크 및 녹취록 작성 (3회) 

○ 대면 프로그램 진행 및 영상 촬영 (1회)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예술 및 놀이 활동 상호 제안  

과정 아카이브(영상 및 사진 공유) 

후속 간담회 (1회)

연구 보고서 


5.︎ 모집 대상


연구 참여 가정 모집 (관내 5가정 이내) 

대상 : 코로나 환경에서 집안에서 아이와 양질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고민이 있는 부모 및        아빠와 함께 창작하고 실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아이  

화상 인터뷰 및 토크 3회, 대면 프로그램 1회

주중 아이와 놀이 실천, 인문적 실천 및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하기

결과 공유회 참석



6.︎ 진행 일정


○ 8월 - 9월1주 : 연구 참여 가정 모집 

○ 9월 1주 : 연구 참여 가정 선정 발표 

9월 3주 – 10월 4주 : 화상 토크 모임 3회 및 대면 프로그램 1회 진행 

○ 11월 1주 - 3주 : 연구 결과 보고서 작성 

○ 11월 4주 : 공유 네트워크 파티 (대면 / 비대면 코로나 추이를 보고 변경) 


21세기 육아하는 아빠들의 낯 간지러운 이야기 공동체 


시대에 따라 아버지라는 이름의 의미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근대에 씌워진 아버지의 이름에는 묵직하고 끈적이는 함의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가부장 사회에서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아버지들은 정체성은 혼란과 부침을 겪었다. 지금도 ‘아버지’ 하면 위험한 인간, 폭력 가장이라는 어두운 그늘과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무거운 책임감과 ‘축 처진 어깨’와 같은 끈적이는 슬픔이 뒤범벅되었다. 하물며 2000년 초에 유행한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어린이 노래가 아버지에게는 공포스런 협박용 노래라는 웃지 못할 유머도 있다. 

70-8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독재 정권의 3저 호황 속에서 상대적 풍요 속에서 자라났고 3S 정책으로 기획된 프로야구리그 개막은 유년시절 화려한 팬덤을 경험하게 하였다. 고등학교 혹은 대학생 무렵 IMF를 경험하였고 그 이후 평생 고용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다. 육아하는 아빠 프로그램의 인기 보여주듯 완전고용이 없는 경쟁 속에 있는 오늘날 아버지들은 육아에 대해 진지한 고민도 하며 아이와 잘 놀아주는 초인적 노력으로 슈퍼맨이 되어야만 했다. 

이런 맥락에서 아버지들이 아이와 함께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정말 초인적인 노력과 특별한 노력이 없으면 좀처럼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시는 아버지들이 있었다. 

아버지들은, 아니 대다수의 성공한 성인들은 기능과 직함으로 사회 내에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직함과 기능 안에는 그에 걸맞은 페르소나가 있다. 그렇지만 결국 인간은 언젠가 맨몸으로 와서 맨몸으로 돌아가게 된다. 언젠가 그 기능을 벗어 버렸을 때 성인 남성들은 가족과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사회인 야구단에 사회인이 아니면 참가할 수 없을까? 각종 취미 공동체에도 직함이 없어도 참가할 수 없을까? 자녀에게 ‘나’라는 성인은 경제적 부양이라는 역할이 사라져도 여전히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정말 참 아비 노릇은 무엇일까? 

이번 2020 아버집 프로젝트는 유례없는 코로나 상황에서 특별하게 마주하게 된 특별한 만남의 공동체였다.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들, 우리가 처하게 된 상황들에 대해 치열하게 비대면으로 만남과 대화를 시도하였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과 태도를 통해 보고 느끼며, 함께 대화하고, 각자 놀이하고, 함께 다큐를 감상하고 걷고 산책하는 상황을 통해 저 마다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갔다.

남자들은 사회에서 만나 술자리를 가지면 육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 육아에 대한 정보도 적고 그런 이야기가 낯간지럽다고 생각해 온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맨정신에 이어갔다. 위기의 시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아빠들의 어떠함은 우리 자녀들에게 극복해야 할 한계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할아버지들을 현재의 아버지들이 극복해야 했던 것처럼. 

이와 같은 만남과 대화가 유의미한 이유는 이러한 대화들이 고정된 아버지상에 대한 지평을 또 다른 단계로 넓혀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혼란할수록 예술가의 역할은 고정되지 않고 그 경계를 확장 한다. 동시대 팬데믹 상황에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공연과 전시 등 문화 생활과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세계를 경험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성과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삶이 지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공연을 감상하는 것도 삶에 위로가 되고 미적인 체험이 되겠지만 작은 행위들이 쌓이고 서로 고립을 넘어서서 함께 애쓰고 있다는 행위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발견 할 수 있다. 

예술이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체험을 하는 것 일 수도 있지만 일상의 평범한 만남조차 누릴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작은 손짓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서로의 다른 하늘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었다. 대단한 감각행위를 공유하거나 미적체험을 하는 것보다 비대면이라도 어떤 행위를 같이 한다는 자체가 아름다운 순간이 되기도 하였다. 


예술가가 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 생각과 사고의 틀을 정해놓고 대상을 만날 때 실패 하게 된다. “예술교육”이라는 단어 안에 담긴 의미는 많이 낡았고 오해와 선입견들이 뒤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층위가 무척 넓은 불분명한 두 가지 단어를 한 번에 합쳐 놓으니 시민들과 예술가들은 다른 생각을 하면서 만나게 된다. 시민들은 무언가를 받기 위해 센터나 기관에 문을 두드리고 예술가는 무언가 우월하고 특별한 체험을 주기 위해 수업을 준비하는 방식이 된다. 


이번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도 예술가들은 어떤 시대적 문제의식과 고민을 나누고자 하였는데 일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아버지들은 문제의식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의식 중 깔려 있었던 문제의식이 충만한 우월한 예술가적 시선이라는 오만을 깨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현상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과정이었다. 삶의 경험과 주어진 맥락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번 아버집 프로젝트는 예술교육이라는 단어보다는 우발적인 만남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예상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낯선 만남을 가진 것이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무언가 서비스와 결과물을 주고받는 낡은 구도를 깨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사는 익명의 사람들이 아이를 매개로, 예술을 매개로 만나고 서로의 다른 삶들을 들여다보며 함께 의미를 모색해보았다.




V. 변화하는 예술교육의 차별성과 제언 


예술교육이 지속가능한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기 이전에 지금 우리에게 발생되는 현상과 사건들에 대한 문제의식과 다양한 관점을 나누는 시간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서 시작한 출발이 ‘우리’를 넘어 공동체, 자연까지 확장되어 사고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고, 모두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질문을 발생시키고 만들어 내는 활동이 될 수 있도록 보다 나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체에서 발생되는 실천적 움직임은 개인마다 다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 다른 형태로 발생한다. 지속적인 관심과 관찰 소통이 필요하고 과정에서 발생되는 것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축척된 것들에 대한 아카이빙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 안에서 발생되는 관점의 발생은 무형적인 것에 가깝다. 가시적인 결과물이 아닌 잠재된 실천의 힘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힘의 작동에 주목하고 연대하고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아버집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변화하는 예술교육의 실험적 전망을 살펴보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변화의 가능성과 제언을 정리하고자 한다.   


○ 시간과 장소 

특정한 시간대 고정된 센터와 워크숍 장소에서 모이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들이 계속되고 있다.  시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연대 의식을 가지고 작은 행위들을 실천하면서 의미를 나누는 소통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술교육은 특별한 체험이 될 수도 있지만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와 같은 방식으로 확장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정한 실천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가 일정기간 안에 미션을 함께 수행하고, 그 결과물들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하고 있다는 신호를 서로에게 확인시켜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환경운동과 같이 이슈가 분명한 사회적 행위들은 예술적 실천으로 연결하는 범지역적인 프로젝트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예술가는 일종에 캠페인을 디자인하고 촉매를 개발하는 역할이 된다.  


장소 또한 지엽적인 한 장소에서 문화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넒은 숲과 마을 블록 등 특정 지역 전체를 배경으로 프로젝트를 실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통된 배경을 크게 설정하고 그 안에서 일정한 체험의 목표들을 설계를 해주면 참가자들이 스스로 놀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양재 숲 지오캐싱’ 방식도 이러한 가능성을 실험해 본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서로 거리를 두고 걷고 활보하면서도 끊임없이 일정한 목표를 위해 동참의 신호를 주고받게 된다. 


티칭 아티스트와 수용자의 관계의 변화

참가자를 교육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프레임은 낡았다고 생각한다. 

경험을 선사해 주고 변화를 시켜야하는 것이 교육의 유일한 목표가 되면 참가자들은 이 시간을 회피하게 된다. 예술가는 환경을 섬세하게 설계함으로써 참가자들이 자기다움을 발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예술가, 예술교육자는 단순히 참가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들이 드러나고 충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확인 해주는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교육자는 진행하는 사람 본인에게 초점을 모으는 게 아니라 참가자들이 서로 서로를 보고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관계를 엮어주는 감각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 프로젝트에서는 티칭 아티스트(이하 TA)가 체험의 과정과 내용을 설계 해놓고 수용자가 그 안에서 경험하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했던 기존방식에서 벗어나 생각의 공유 과정 자체를 함께 경험하고 만들어 가려는 시도가 있었다. TA가 대화의 큰 범주는 준비를 하였지만 이를 이해하는 상황과 맥락이 저마다 다르다는 점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대화의 과정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미끌어진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단회적 체험 프로그램이 가진 한계점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기존의 과정에서는 이러한 어긋남을 결코 허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TA는 무언가 체험을 제공해 주고 수용자는 혜택을 받는 관계가 아닌 일시적인 공동체 관계를 도모 하면서 결과물을 추구하지 않고 관계를 구축해 나갔다. 참가자들 또한 처음에는  코로나 상황에서 무언가 새로운 예술체험으로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참가 하였으나 연구와 대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들은 단순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로 변모하게 되었다. 


메세지가 한 방향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각도로 주고받게 되었다. 참가자들이 서로에게서 듣고 다름을 발견하고 생각을 발견해 과정이 있었다. 어떤 아버지는 대화를 통해 자신이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아버지 상에 메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셨고, 공교육 종사자이신 아버지와 사교육 종사자이신 아버지들이 대화 과정 중에 돌봄의 공백들이 서로 다른 직업군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티칭 아티스트의 역할 변화 : 코칭 혹은 퍼실레이터로서의 변화  

예술가가 더 이상 새로운 체험이나 스펙터클을 생산해 내는 사람이 아니라면,  특히 만남의 대상이 예술계 사람이 아닌 공공 시민을 대상을 한다면, 이번 프로젝트 연구 과정 중에 예술가의 역할은 가르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촉매자 퍼실레이터의 역할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지역과 가정안의 현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당사자들이다. 그 당사자들이 서로 담론을 만들어가고 문제를 재인식하도록 돕고, 자발적으로 가정과 지역안의 현안들을 예술적인 방법으로 실천해 가도록 돕는 방향으로 예술가의 역할이 조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번 연구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실천의 공동체를 만드는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로서 시민 안에 내재된 자발성과 동력을 끌어내어 돌봄과 환경과 같은 실천의 문제를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판을 구성하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참여자(아버지)분들은 어릴 적 느끼던 아버지의 모습과 지금의 변화되는 시대상 가운데 자신의 역할과 태도에(아이와 관계 맺는 방식) 대한 성찰의 시간을 스스로 발견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개인의 역사 속에 발견되고 포착된 사고의 형태는 현재의 모습에서 나아갈 수 있는 사고의 확장을 불러일으켰고 그 안에서 스스로 실천해야 할 동기와 힘을 연대를 통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또한 다양한 관계 맺기에 대한 이해가 스스로 발생되었다. 예술을 대하는 자신의 거리감이 다양한 관계 맺음에 대한 사고를 통해 자신만의 수용 방식을 용기 내어 말 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에게 발생되는 느낌과 현상에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예술가와 함께 환경을 포용하면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활동을 만들어 가는 결과물에 대한 성취감과 기대감도 발견 할 수 있었다.




○ 기관의 역할 

팬데믹 시대에 기관은 무형의 허브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유형의 시설은 시민에게 언제든 차단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심 공간에 사람을 모으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그 곳에서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공간의 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공간의 특성은 사람의 드나듦에 의해 결정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매개로 어떻게 드나들 수 있는가에 따라 그 공간의 성격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들을 모이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려면 지역에 대한 연구가 선행이 되어야한다. 


어느 지역성을 거점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려면 먼저 지역에 대한 리서치가 선행 되어야한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리서치 작업을 창작 작업으로서 접근할 수 있다. 탐사, 발견, 인터뷰, 전시, 소리수집, 움직임의 발견, 사람 사건 등등 다양한 언어로 장소를 재구성 하고 이러한 리서치의 바탕으로 지역 안에 필연적인 현안을 가지고 사회적 관계로서 예술과 예술교육을 실행할 수 있다. 


예술교육자는 사회적 예술작업으로서 시민과의 만남을 조직하게 된다면 기관은 일종의 담론을 생산하는 큐레이팅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떤 예술가를 어떻게 시민과 만나게 할 것인가를 기획하고 지역의 이슈에 따라 만남들을 조직하게 되면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와 결과물 들은 하나의 담론으로 생성될 것이다. 


시민과 예술교육자를 연결하는 것은 예술가의 특성과 참가자의 특성에 따라 개별화 되어야 한다. 어떤 만남은 거리에서 이루어 질수 있고 어떤 만남은 이메일과 메신저를 통해서 어떤 만남은 공원이나 산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 어떤 만남은 일대일로, 어떤 만남은 시간차를 두고 소수 를, 어떤 만남은 일대 다수로 이루어 질 수 있다. 어떤 만남은 완전이 아날로그 및 디지털 신호로만 주고받을 수도 있다. 


일반적인 전시 중에 맥락과 상관없이 신기한 작품들을 단순 나열하여서 주목을 끄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신중하게 기획된 전시들은 작가들이 자신이 맥락 안에서 최대한 창작의 자유를 열어 주고 마음껏 놀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이야기들이 시대적 맥락 안에서 확산되고 회자 된다. 


신중하게 기획된 시민과 예술가의 우연한 만남은 사고가 아닌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 사건은 이야기가 되고 새로운 가능성들을 품게 된다. 이러한 유연한 가능성이 순환되는 예술교육의 새로운 생태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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