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비빌언덕 프로젝트 (1) 지속가능한 삶


비빌언덕 드로잉(부분)_Ink on paper_788x1091mm_2016




작가의 삶은 질박하다.

예술가의 길을 걸어 가기로 한 많은 사람들은 가족들과 지인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어려운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 왜 그러한 삶을 선택하는가? 성취나 성공에 대한 욕구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불안정한 삶을 스스로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모든 불안을 감내 할 만 한 가치가 예술작업 안에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로부터 스스로 소외되지 않고 은퇴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서 살수 있다는 점이 예술가란 직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현실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본인을 비롯해 아직 자신의 입지를 세우지 못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물론이거니와 젊어서부터 각종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작가가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은 집안의 경제력과 아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자괴감은 젊은 세대에 더욱 짙게 배어 있다. 사회에서는 종종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생산하고 좋아하는 일을 위해 모험하는 삶이 위험한 것으로 비춰진다.

특히 시각예술작가가 직면해야 하는 첫 번째 부담은 짐과 공간의 문제이다. 시각예술작업은 공간과 물질을 다루는 그 특성상 공간대비 생산성이 매우 떨어진다. 예를 들면 문학작가나 음악작곡가는 노트북과 서재, 카페만 공간만 있어도 창작이 가능한 반면 화가 및 설치미술가들은 크고 넓은 공간을 차지하면서도 그 공간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권력과 위계를 극복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게임이다. 그렇다고 문화예술계의 지정학적인 배열상 서울이나 대도시를 무작정 벗어나서 작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칫하면 시골에서 자유로운 삶은 고립으로 연결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인의 경우 졸업 후 4명의 친한 형과 동기 작가들과 함께 돈을 모아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80m2 의 사무실을 얻었다. 서울 은평구 북쪽의 한적한 빌라 촌에 위치한 4층 건물의 4층이었다. 여름에는 천장의 열이 뜨거워서 숨쉬기도 힘들었고 겨울에는 난방비 폭탄이 무서워 춥게 지냈지만 그럭저럭 우리의 낭만과 자부심을 유지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일 인당 월세 15만원 정도를 내다가 중간에 한 명의 멤버가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일 인당 20만원 정도로 다소 인상 되었다.

보통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20만원의 월세가 매우 적은 것이겠지만 창작 작업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는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젊은 작가들은 비정기적인 일거리에 의존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이 간혹 팔리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물고, 미술관련 알바를 구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설사 구한다 하더라도 단기적이거나 혹은 작가 스스로가 창작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정기적인 시간적 구속을 회피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매달 나가는 임대료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서울 근교에서 작업하는 주변 작가들을 보면 혼자 작업실을 사용하는 경우 평수와 위치에 다르겠지만 보증금 500 30만원에 5평 사무실을 혼자 쓰거나 2000 70만원에 조금 넓은 공간을 공유해서 나눠 쓰는 정도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작업실을 유지하는 것 같다. 이런 공간들은 일반적인 상업시설로 임대하기에 부적합한 공간들이지만 작가들을 개의치 않고 입주해 들어가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설계초안


[비빌언덕]
어머니는 종종 사람은 비빌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없이 무에서 홀로 출발하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자수성가한 사람일지라도 비빌언덕이 있어야 자수성가도 할 수 있는 거라 말씀하셨다. 본인도 비빌언덕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 왔다.
그 사이 작업실 멤버들의 신상에 변화가 생겼다. 졸업 후 7년 사이 작업과 짐들은 작업을 열심히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3배로 늘어났고 필자는 결혼하고 생계를 유지하느라 작업실 출입이 소원해졌고 또 한 사람은 2015년 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서울 근교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작업실을 해체할 때가 된 것이다. 2014년 겨울로부터 8개월 정도 시간여유를 두고 작업실 뺄 것을 서로 합의하고 각자 작업실을 어떻게 해결할지 알아보는 여유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나는 내가 사는 은평구에서 차를 타고 주변지역으로 나가보았다. 고양시와 은평구 사이에 그린벨트 지역이 나온다. 그 곳의 부동산 사무실에 알아보니 사무실 같은 공간은 없고 30m2 남짓의 농가 주택을 월세25만원에 줄 수 있다고 하였다. 개 보수 예산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또 개발이 제한되어서 용도가 없는 임야 같은데 컨테이너를 놓고 월세 10만원씩 내는 자리를 주선해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괜찮겠다 싶었다. 컨테이너 두 동 정도를 개조하면 40m2의 작업실 공간을 쉽게 마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평소에 해왔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쉽게 이동할 수 있고 비용도 저렴하여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고 여러 가지 걸리는 게 많아 보였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더 나아가 월세 10만원도 안 낼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놀고 있는 시골집터가 하나 있는걸 알게 되었다. 시골이라고 하지만 시내에서 차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연로하시고 시골에 집 지을 여력이 없다고 하셨다. 평생 시내 중심으로 생활해 오셨기 때문에 갑자기 시골동네로 이사 가는 것도 두 분 생활 패턴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지방도시의 아파트 생활이 은퇴하신 두 분의 노후 생활에는 가장 적당한 형태였다. 그래서 아무 기능 없이 놀고 있는 그 땅에 컨테이너 작업실을 개조해서 놓으면 어떻겠냐고 말씀 드렸다. 무척 반기는 기색이셨다. 서울에 있는 아들이 작업실 핑계로 좀 더 자주 내려올 것을 기대 하셨는지 부모님께서 적극 환영해 주셨다. 나 또한 앞으로 더 나이 들어가실 부모님을 자주 찾아 뵐, 건설적인 이유를 마련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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