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PLAY PARK IN GOYANG
서울시는 1971년도 녹지보존과 도시 연담화를 막기위해 서울외곽에 개발제한 구역을 지정하였고 농업이외에는 다른 개발 사업을 할 수 없도록 아주 보수적으로 지켜왔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 국가주도로 낙농업센터, 그리고 각종 골프장, 외곽도로 및 공공 시설등은 틈틈히 개발되어 왔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 도시성장 동력이 고갈되어서 인지 대단위적인 신도시 개발 사업들이 서울 외곽지역에서 진행 되어 왔다. 각종 규제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국가주도의 보상과 개발 사업을 진행할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대치상황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현실때문에 군대가 곳곳에 주둔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유사시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작전지역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심지어 어떤 국방장관이 유사시 일산신도시가 방호벽이 된다고 말해서 일산시민들의 공분을 산 적도 있었다. 지도정보 어플에서 보면 곳곳이 포토샵의 스탬프 기능으로 위장(Camoflage)되어 있다.
서울과 일산이라는 거대 도시 사이의 중간지역, 농업, 낙농업, 산, 무덤, 군사작전 등 특수한 맥락속에서 이 장소들을 탐사하다보면 매우 낯설면서도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다. 도시와 농촌의 장점을 고루 갖춘것 같아보이는데 무언가 사람살기에 애매한 면모들이 있다.
낮은 인구밀도는 방치와 유기 혹은 다양한 편법행위들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주인같은 사람들은 살지 않는듯한 느낌이다. 부동산 실소유와 상관없이 모두다 손님으로 살고 머물고 일을 하면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많은 방치와 적치물들이 그곳을 점유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여력을 반영하는 것 같다.
특히 위의 사용하지 않는 놀이터는 주거지역과 개발제한 구역 경계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 놀이터인데 아파트 인구구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였음을 암시한다.
버려진 물건들은 누군가 폐기물 처리비용을 지불하고 치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린 사람은 그 지역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살고 있는 주민들은 책임여부가 불분명한 공터에 버려진 물건들을 대신치워줄만한 여력이 없는 것 같다.
버려짐은 이러한 권리와 책임의 틈사이에서 발생 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무언가 엉뚱한 행동을 해도 될 수 있는 창조의 가능성으로 비춰졌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장난감들이 넘쳐난다. 개중에 비싼것도 있지만 대부분 저렴하고 금방 아이들이 성장하기 때문에 중고시장이나 물려줌의 형태로 회전율이 높은 것이 아동들의 물품이다. 그런데 매력적인 인형, 변신 자동차, 기타 모사품들은 한번 팬덤이 형성되면 매우 빠르게 확산되는데 아이들 손에서 시들해지는 속도도 빠르다. 아이들은 정말 그 장난감을 소유하고 싶다기 보다는 친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지고 싶은 경우가 많다. 결국 아이들이 원하는건 어울림이고 놀이의 경험이 지속되는 것이다.
좋아보이고 화려해보이는 완구는 소유한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를 갈라놓는 기능이 있다. 태생상 같은 걸 무한하게 소유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명이 만지고 있으면 다른 아이는 만지지 못한다. 가지지 못한 아이가 약자이면 울거나 떼를 쓰고 강자이면 힘으로 빼앗는다.
그래서 좋은 놀이감이란 자연물들처럼 수평적이고 증식이 가능하고 열려있다. 대표적인 예로 여러 종류의 블럭 장난감들을 들수 있는데, 아이들 수준별로 증식이 가능하고 갯수도 많아서 아이들이 싸우지 않고 놀 수 있다. 그리고 답이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지루해 하지 않는다.
방치된 pvc파이프, 매트리스, 모종화분, 트레이,탱크, 토관 등 외곽지역에서 발견된 사물들은 대부분 대량생산 산업의 부산물들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더니즘의 대량, 규격, 저렴, 효율의 산물들이 자연의 놀이감들과 닮아 있는 것이다. 결말이 열려있고 여럿이 함께 해도될 만큼 크기가 크거나 수량이 많고 자가 증식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말만 잘하면 거의 공짜로 가져올 수 있다.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대치상황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현실때문에 군대가 곳곳에 주둔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유사시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작전지역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심지어 어떤 국방장관이 유사시 일산신도시가 방호벽이 된다고 말해서 일산시민들의 공분을 산 적도 있었다. 지도정보 어플에서 보면 곳곳이 포토샵의 스탬프 기능으로 위장(Camoflage)되어 있다.
낮은 인구밀도는 방치와 유기 혹은 다양한 편법행위들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주인같은 사람들은 살지 않는듯한 느낌이다. 부동산 실소유와 상관없이 모두다 손님으로 살고 머물고 일을 하면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많은 방치와 적치물들이 그곳을 점유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여력을 반영하는 것 같다.
특히 위의 사용하지 않는 놀이터는 주거지역과 개발제한 구역 경계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 놀이터인데 아파트 인구구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였음을 암시한다.
버려진 물건들은 누군가 폐기물 처리비용을 지불하고 치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린 사람은 그 지역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살고 있는 주민들은 책임여부가 불분명한 공터에 버려진 물건들을 대신치워줄만한 여력이 없는 것 같다.
버려짐은 이러한 권리와 책임의 틈사이에서 발생 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무언가 엉뚱한 행동을 해도 될 수 있는 창조의 가능성으로 비춰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1차대전이후 스웨덴의 조경건축가 쇠렌센과 영국의 알렌 여사가 주도한 '모험 놀이터' 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전쟁후 폐허가 된 도시위에서 놀이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아이들에게서 출발한 운동이었다. 폐허는 아이들의 모험으로 채워졌고 모험속에서 아이들은 위험에 대처하고 긴장을 견뎌내고 협력하고 스스로 문제를 극복하는 배움이 이루어 졌다.
우리는 한동안 전쟁은 없었지만 냉전체제과 개발지상주의의 틈에서 발생한 폐허에서 어떤 교훈들을 배울수 있을까?
그래서 아이들의 방식으로 공터와 황무지 그리고 적치물들을 가지고 재조합하는 놀이터를 상상해 보았다.
우리는 한동안 전쟁은 없었지만 냉전체제과 개발지상주의의 틈에서 발생한 폐허에서 어떤 교훈들을 배울수 있을까?
그래서 아이들의 방식으로 공터와 황무지 그리고 적치물들을 가지고 재조합하는 놀이터를 상상해 보았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장난감들이 넘쳐난다. 개중에 비싼것도 있지만 대부분 저렴하고 금방 아이들이 성장하기 때문에 중고시장이나 물려줌의 형태로 회전율이 높은 것이 아동들의 물품이다. 그런데 매력적인 인형, 변신 자동차, 기타 모사품들은 한번 팬덤이 형성되면 매우 빠르게 확산되는데 아이들 손에서 시들해지는 속도도 빠르다. 아이들은 정말 그 장난감을 소유하고 싶다기 보다는 친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지고 싶은 경우가 많다. 결국 아이들이 원하는건 어울림이고 놀이의 경험이 지속되는 것이다.
좋아보이고 화려해보이는 완구는 소유한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를 갈라놓는 기능이 있다. 태생상 같은 걸 무한하게 소유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명이 만지고 있으면 다른 아이는 만지지 못한다. 가지지 못한 아이가 약자이면 울거나 떼를 쓰고 강자이면 힘으로 빼앗는다.
그래서 좋은 놀이감이란 자연물들처럼 수평적이고 증식이 가능하고 열려있다. 대표적인 예로 여러 종류의 블럭 장난감들을 들수 있는데, 아이들 수준별로 증식이 가능하고 갯수도 많아서 아이들이 싸우지 않고 놀 수 있다. 그리고 답이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지루해 하지 않는다.
방치된 pvc파이프, 매트리스, 모종화분, 트레이,탱크, 토관 등 외곽지역에서 발견된 사물들은 대부분 대량생산 산업의 부산물들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더니즘의 대량, 규격, 저렴, 효율의 산물들이 자연의 놀이감들과 닮아 있는 것이다. 결말이 열려있고 여럿이 함께 해도될 만큼 크기가 크거나 수량이 많고 자가 증식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말만 잘하면 거의 공짜로 가져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