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서울의 동쪽 끝_도시 경계 장소성에 대한 리서치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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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한양 인근 가운데 망우리보다 더 아름다운 곳도 없다. 그러므로 동리에 있는 산과 물은 밝고 빼어나며, 원근에 보이는 산들의 기운과 산세는 맑고 웅장하다." (망우동지,1788)
서울의 어원은 '높이 솟은 울' 즉 신과 가장 가까운 도시이다. 바벨론의 마두룩 신전과 우르의 유적에서 발견 되었듯이 고대 도시는 신을 위해 건설 되었고 왕은 그 신의 대리인으로서 도성 건설을 주도하였다. 도시는 거룩한 곳이고 시민들에게 통합되고 안전한 경험을 주는 선택받은 백성들의 장소이다.
이에 대척점으로서 '도성 밖'은 어떠한 곳인가? 예로부터 도성밖은 추방된 자들의 공간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도둑과 비류들을 붙잡아 얼굴에 인두를 새기고 그들을 도성밖으로 추방하였다. 그들은 도성밖 조산에 모여 살았고 패거리 지으며 도시사람들이 꺼려하는 부정한 일들을 하면서 살았다. 전근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 밖은 언제나 비류들의 차지였다. 창녀와 가난한자 그리고 저주받은 병에 걸린 자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이처럼 도성은 신의 보호를 받는 안전한 곳이었고 성 밖은 부정한 일을 해결하는 장소, 혹은 신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들의 장소였다.
이번 탐구는 서울의 동쪽 외곽 경계인 '망우'일대에 대한 공간답사와 조사를 바탕으로 도시 변두리 공간에 대한 특징들을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 예술가의 직관으로 개입의 지점들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본인은 2013 창동 레지던시와 2014 이태원 리서치 팀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거주민들의 기억을 통해 심상지도를 제작하는 공공예술프로젝트들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서울의 변두리가 서울로 편입되는 과정에 대해들을 수 있었고, 도시의 욕망구조가 성립되는 과정이 이러한 도시와 변두리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장소'는 중립적인 환경요소가 아니라 힘의 위계구조를 통해 구성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서울의 성장은 주변부를 흡수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 중심의 대척점에 있는 주변부는 서울의 필요한 자원들을 공급하는 한편 도심 내에 불필요한 배설물을 흡수하는 배후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이처럼 농촌을 주변화 하고 농촌의 인력을 대도시로 흡수하면서 대도시의 경계선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성장한 국가의 부는 소수에게 재분배되는 방식으로 이루어 졌다. 즉 중심과 주변 담론이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경계선이 바로 서울의 변두리 지역이다. 그리고 그 신화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린벨트를 조금씩 풀어 보금자리 대책을 내어놓는 것이 그 예 중에 하나이다.
장소를 정의하려는 노력은 지리학자 이푸투안의 말을 빌리면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아내려는 시도에 해당한다. 그런 시도들은 하나같이 질서를 창조하려는 최초행위의 의미 작용과 관련된 성격이 있다. 새로운 도시나 마을을 건설할 때는 한 장소를 새롭게 의미화 하는 의례를 통해 반드시 성격을 변화시키는 전통들이 뒤따랐다. 서울의 변두리는 현재진행형으로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고 새로운 장소들을 세우려는 시스템들이 작동한다. 이에 대한 예술가의 개입은 일종의 의례와 축성을 통해 과거의 장소를 보내고 새로운 장소를 맞이하기 위한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도시를 만들고자하는 욕망은 본래 거대 권력과 자본이 아니고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하지만 이번 탐구를 통해 그렇지 않은 전통들이 있음을 확인하고 자율적인 개인들의 관점에서 장소성을 정의하려는 풍부한 시도들이 있었음을 느슨하고 혼종적인 경관을 가진 서울의 변두리 경계지역에서 재확인하고 이를 적절한 시각예술 언어로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