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둥프로젝트 : 지속가능한 어린이 놀이 영토를 위한 제언
빈둥 프로젝트 : 지속 가능한 어린이 놀이 영토를 위한 제언
[양평시민의소리 기고문 2019.10]
필자가 놀이터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된 계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시리아 내전이 한창 중 일 때 나온 보도사진이었는데 도시가 폭격으로 인하여 폐허가 되고 잔해 사이로 빗물 웅덩이가 생겨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 장소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또한 국가 기반이 열악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자율적으로 자신의 모험심과 놀이를 주도하면서 성장 하였던 기성세대 어른들이 볼때, 요즘 아이들은 놀 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놀 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어른들이 그 아이들을 골목에서 놀 수 없도록 시간과 공간을 조직했기 때문이다. 놀 시간과 공간이 어른들의 산업과 차량 위주의 설계와 배타적인 부동산 이해 관계 속에 사라진 것이다. 희극적인 예를 들면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시설 공사(어린이를 위한)를 하고 시설보호를 위해 ‘학교에서 뛰거나 공을 차지 마시오’라고 푯말을 붙여 놓았다. 그 학교는 누구를 위한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사회가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가장 편리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눈앞에서 문제를 보이지 않게 치우는 것이다. 근원적인 필요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기 어려운 문제를 눈 앞에서 사라지게 함으로써 그 문제를 덮어 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이 도시와 마을에서 그런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감한 옥천 초등학교의 학부모들 중 일부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관련 기관에 문 두드리고 읍소도 하고 어린이 복합문화 공간을 지역에 유휴 공공시설에 설치해달라고 제안도 해보았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느낌을 계속 받으며 아이들은 점차 자라갔고 그런 식으로 아이에게 중요한 초등학교 시절을 다 보내고 나면 문제는 사라짐으로써 잊히게 되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 가운데 이번에 경기문화재단의 <보이는 마을> 지원 사업에 당선되어서 어린이를 위한 모험 놀이터 영토를 임시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되었다. 한 어머님의 표현처럼 7일간의 기적이었다.
아이들의 놀 권리와 놀 영토를 위해 관심을 모으고 있던 어머니들과 그 자녀들이 모여 예술교육자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놀이 영토를 설계하고 만들어 가는 실험적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아이들은 ‘빈둥 프로젝트’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어떤 요소들이 아이들을 열광하게 했던 것일까? <빈둥 프로젝트: 함께 틔우는 놀이터> 는 모험 놀이터를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가기 위해 몇 가지 놀이적 가치를 합의하고 실행하였다.
그 중 첫째는 ‘위험’의 가치에 대한 재인식이다. 함께 참여한 부모들은 위험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하고 이해하였다. 아이들이 스스로 감내할 수 위험을 스스로 시험해 볼 수 있도록 어른은 인내심 많은 지혜로운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부모들에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그리고 부모가 한번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어 주었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책임 있게 자신의 놀이를 스스로 조직해 가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자신이 어느 한계까지 견딜 수 있는지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이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작은 위험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본 친구들은 큰 위험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위험한 곳은 놀이터가 아니라 아이들이 언젠가 실제로 마주하게 될 세상이다. 평생 ‘하지마.’ 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난 어린이가 단단한 굳은 살이 하나 없이 청년이 되었을때,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스스로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의욕이 왕성한 경험. 그리고 그것을 조금씩 실행해 보고 실패도 해보고 함께 성취도 하는 짜릿한 기쁨이야 말로 아이들이게 정말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하지마’라는 말로 훼방하는 것도 어른이고 이를 열어 줄 수 있는 것도 어른이다. 놀 시간과 놀 땅과 놀 수 있는 관계를 열어 줄 수 있는 것도 어른이다. 건강한 마을 생태계를 열어주고 쫓겨나고 내몰리는 아이들을 변호해 줄 수 있는 것도 어른들이다.
마을 공동체 안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모험 놀이터 영토를 만드는 것은 단순한 놀이터 만들기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교육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분열되고 다핵화되어 있는 지역 안의 간극을 연결하고 미래를 위한 가장 건강하고 안전한 실험과 교육의 장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제 <빈둥 프로젝트>는 임시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빈둥 모험 놀이터의 경험을 지속하고 싶어 한다. “옥천초 학부모회 탱자탱자 놀마당” 이란 이름으로 자발적으로 조직을 짜서 돌아가면서 “놀이 이모 : 플레이 리더” 역할을 맡기로 하였다. 하지만 아직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관리라든지 땅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벌써부터 여기에 새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문의가 쇄도 하고 있지만 관리와 재교육에 대한 약속이 전제되지 않은 체 무작정 자원봉사 어머니들에게 책임을 떠 맡으라고 할 수가 없다. 1기 2기 3기... 계속 순환해서 이러한 놀이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늘어나기 위해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