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공동체와 함께만는 지도 The Map Making with Community


공동체가 함께 만든 지도



잇!태원: 감각의 지도 프로젝트,
It!Taewon : The Geography of sense
Serigraphy on steel board, 200x200cm, 2014



서울 아트가이드 칼럼 


우리는 그 동안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실제 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기획이나 공적인 지도에서는 익명으로 처리되는 개인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에게 삶 속에서 체득된 공간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들을 수집하였다그리고 주민들의 손으로 그린 지도아카이브북 등으로 시각화 하는 작업을 진행 해 왔다우리가 주목하는 지점은 사소하고 쓸데 없어 보이는 이야기 속에 의외의 순간 불쑥 발견되는 개인들의 기억과 역사의 흐름이 중첩되는 접점이나 거대한 기획과 상충되는 자기화된 방식의 삶의 태도들이다우리는 수치와 도표와 거창한 조감도로 표현되는 도시기획에서 결코 발견될 수 없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거대한 지표 아래에서 묵묵히 고민하고 일하고 있는 개개인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였다.    
스트라본(BC63?-AD23?)으로부터 기원한 지리학의 전통을 보면 제국의 지배방식과 밀접관 관련을 가지고 있다군사치리행정을 위해 지도는 제작되고 정치적으로나 심미적으로 유용하지 않는 정보들은 생략하는 방식으로 제작자의 의도나 세계관을 반영한다다시 말해 지도는 축적이 시작된 순간부터 진실을 전부 담을 수 없고 정보선택을 통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 할 수밖에 없다우리는 애초에 객관적인 정보에 접근 할 수 없다면실제 그 장소를 점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각을 따라 특정 장소를 시각적으로 구조화 시키고자 하였다.

주민들의 자기화된 장소기억
우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많은 지역 거주자들을 만났고 그 장소와 관련된 자기화된 방식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인터뷰를 통해 듣게 된 내용들을 일부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창동은 물이 많고 좋기로 유명했다물이 풍부해서 60년대부터 서울의 준공업 지대로 개발되었다주로 물이 많이 필요한 양조간장제지벽돌 공장들이 들어섰다지금은 그 공장터들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84세의 한 어르신은 창동의 샘표공장에서 근속하셨고 퇴직하셨다집에서 공장으로 출근하는 길은 산 넘어 가는 길인데 이 길은 지도에도 안 나오는 길이었다.

-경로당을 우리가 찾아간 날이 마침 새로온 체조강사가 오기로 한 날이었다그래서 우리가 새로온 체조강사 인줄 알고 반기셨다어르신들은 모여서 화투만 치시는게 아니었다새마을회 봉사지역에 대형 건설사 건물이나 골프장이 들어오면 시위하기은행이 멀어서 불편하면 서명 받아서 출장소 우리 단지로 유치하기 등공공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건들을 만들어 가고 계셨다.

-심지어 어떤 아저씨는 창동스튜디오에 있다가 떠난 외국작가의 작품에 직접 개입하신다창동 스튜디오 옆의 열쇠집 사장님은 외국인 작가가 우이천변에 토끼 조각을 만들어 놓고 갔는데 사람들이 기분 나쁘다고 발로차고 훼손하곤 했다고 한다왜 그러나 자세히 보니 눈이 빨간색이라 기분이 나빠 보인다는 걸 알게 되셨다그래서 그 어르신이 그 눈을 검정색을 칠해놓으셨다고 한다.

-남산자락에 있는 이태원 주공아파트대림아파트는 일제시대에 포방터사격장 이었다해방 직전에 포격장 공사가 끝났는데그때 축대를 쌓고 유탄이 뚫고 나가지 못하게 통나무 벽 안쪽에 자갈을 채워 튼튼하게 만들었다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그 두꺼운 나무를 가져다 집을 지었다.

-이태원동의 군사정권 실세들이 주로 살았던 큰 집들을 동네 사람들은 도둑촌이라고 불렀다행정지도에도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권력층에 대한 당시 주민들의 인식이 담겨있는 지명이다.

-남산의 하얏트 호텔 아래에는 맑은 옹달샘이 있고 아카시아나무가 있는 주민들의 휴게터였다동네 주민들은 나무를 몇 그루 베고 함께 그곳에서 (예전의 친목 모임들이 대부분 그러 했듯이개고기도 삶아 먹고 막걸리 한 잔도 나누는 친목회 휴양 장소로 이용하였다.

-보광동 일대에서 거의 평생 살아온 어르신들은 이태원하면 양색시나 풍기문란’, 혹은 외국인 사건사고가 많은 동네라고 하면서 거기 가면 아이들 버린다고 말리는 친척들의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그런데 인터뷰 했던 어르신들의 공통된 반응은 본인 아이들 중에 어긋나게 자란 아이 없이 모두 잘 자라 주었다는 것이다언론을 통해 비춰진 장소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장소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렇듯 한 장소는 객관화된 데이터 이전에 어느 누군가에게는 청춘을 다 보내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웠던 삶의 터전이다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개인들의 미시적인 이야기들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장소 안에는 끊임없이 이야기와 사건이 충돌하고 만들어진다개인들의 스케일 감각을 따라 여행하는 이러한 작업은 정확성을 포기하는 대신 현재의 한 지점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일정한 관점에서 유효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2015.6. Heonguk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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